AI로 1초 만에 뼈 나이 측정
X선 판독 시간 5분의 1로
3D 기술 활용한 치과에선
보철 만드는 속도 3배 향상
‘스마트 의료’ 현실로
의료계에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정형외과·치과 등 거의 전 분야에서 활용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3D프린터로 환자 맞춤형 치아를 제작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단 몇 초 만에 성조숙증과 폐 질환을 진단한다.
가상·증강 현실로 게임처럼 재활 치료를 받고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대학병원을 넘어 개원가로 확대하고 있는 ‘스마트 의료’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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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서울 금천구의 가산치과기공소는 150여 명의 치기공사로 북적였다. 한쪽에서는 치과에서 보낸 치아 인상(모형)을 토대로 단단한 금속 치아를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여기에 치아와 색·재질이 비슷한 ‘포세린’을 덮은 후 세밀하게 다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끊임없이 울리는 드릴 소리 탓에 옆 사람과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치아를 깎을 때 나오는 먼지를 막으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반면 통로 반대편에 3D프린터 부스는 먼지·소음 없이 쾌적했다. 이곳에서는 드릴 대신 컴퓨터와 밀링머신(2대), 3D프린터(2대)로 치아 보철을 만든다. 치아 인상은 치과에서 보낸 환자의 3D 구강 스캐너 영상으로 대체했다. 이를 ‘설계도’ 삼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 치아를 디자인하고 3D프린터 등으로 맞춤형 치아 보철을 제작했다. 담당 인원은 치기공사 3명이 전부였다. 가산치과기공소 조미숙 총괄실장은 “치아 모형을 만들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 없어 생산 속도가 세 배 이상 빠르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 바꿔놓은 의료 현장의 단면이다.
증강현실 이용해 골종양 수술 성공
3D프린터·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도입되면서 의료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치아 보철 등 환자 맞춤형 의료기기 제작부터 진단·치료에 첨단 기술이 적용되면서 영화·소설로만 구현된 ‘스마트 의료’가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기술은 빅데이터와 AI다. 2016년 암 치료법을 검색해주는 AI 프로그램 ‘왓슨 포 온콜로지’가 도입된 후 이제는 질병 진단까지 AI의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5월에 뼈 나이를 판독해 성조숙증·저성장 진단을 돕는 AI 프로그램(뷰노메드 본에이지)을 도입했다. 종전에는 의사가 대상자의 X선 사진을 성별·나이별로 구분한 표준 X선 사진과 일일이 비교해 뼈 나이를 결정했다. 반면에 AI는 2만여 장의 X선 사진을 미리 학습해 대상자의 X선 사진을 올리면 1초 만에 가장 유사한 표준 X선 사진을 제시해준다. 서울아산병원은 일주일에 200~300건의 X선 사진을 AI로 판독하는데, 기존 방식과 비교해 진단 시간이 5분의 1로 줄었다. 숙련된 전문의와 비교해 AI의 진단 정확도는 94%에 달한다. 서울대병원도 폐 X선 사진으로 폐 결절(혹)을 진단하는 AI 프로그램(루닛 인사이트)을 올해 초부터 활용하고 있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증강·가상 현실 기술도 의료계의 주목을 받는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증강현실을 이용한 50대 여성의 골종양(뼛속에 생긴 암) 수술에 성공했다. 태블릿PC 카메라로 다리를 비추면 사전에 영상 진단을 통해 계산한 종양의 위치·크기가 해당 영상에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이 병원 정형외과 조환성 교수는 “골종양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수술을 해도 종양이 남거나 혹은 과도하게 뼈를 깎을 위험이 있다”며 “증강현실을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동물실험 결과 증강현실 수술의 정확도(절개 오차가 3㎜ 이하인 비율)는 기존 방식보다 20%가량 높았다.
가상현실로 게임하듯 재활훈련
가상현실 기술은 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에서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대인공포증을 앓던 50대 김모씨는 가상현실을 통해 가상의 청중 앞에 나서는 연습을 하며 타인의 시선을 극복해나갔다. 10여 차례에 걸친 단계별 치료 결과,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됐다. 김씨를 치료한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재진 교수는 “가상현실을 통해 불안·우울·공포감을 느끼는 장소·상황에 가상으로 노출되면 마치 예방접종을 받는 것처럼 실제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할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북삼성병원은 지난해 10월 차세대 재활치료실을 개소하면서 첨단 재활 장비인 ‘스마트 글러브’를 선보였다. 장갑처럼 손에 끼면 카메라가 환자의 동작을 실시간으로 인식하는데 이를 통해 모니터를 보며 야구공 잡기, 탁구 치기 등 43종의 재활프로그램을 게임처럼 즐길 수 있다. 강북삼성병원 심재우 파트장(물리치료사)은 “환자의 집중도와 참여도가 기존 방식보다 훨씬 높다”고 전했다.
개원가도 ‘스마트 의료’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치아 보철 제작에 3D스캐너·3D프린터를 도입한 유디치과협회다. 현재 서울의 강남역·목동파리·성신여대점과 광주 두암점 등 네 곳에서 3D프린터와 이를 위한 도면을 제작하는 3D스캐너를 활용하고 있다.
사실 1차 의료기관이 3D스캐너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첫째, 비용 부담이 크다.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갖추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데만 수억원의 비용 투자를 감수해야 한다. 둘째, 임상적인 가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기술의 효용성을 높이려면 다수의 환자에게 적용한 후 지속적인 피드백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단일 병원은 환자가 소수인 데다 설령 문제가 있어도 밀려오는 환자를 뒤로한 채 임상 연구에 매달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유디치과는 네트워크 병원의 장점을 살려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기존에 협력 관계에 있는 치과기공소에 물량 공급을 담보해 밀링머신·3D프린터 설치를 이끌었다. 임상 연구에 드는 비용을 협회가 지원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각 지점에서 얻은 환자 데이터를 모아 3D스캐너의 오차를 줄였다. 단일 치과와 달리 임플란트·크라운·인레이 등 거의 모든 치아 보철에 3D스캐너·3D프린터를 적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진세식 유디치과협회장은 “3D 기술을 활용하면 다양한 치아 보철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어 환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다”며 “임상 데이터가 완벽히 구축되면 전국 123개 협회 소속 치과로 3D스캐너 등을 활용한 ‘디지털 진료’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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