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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대 들고 있다 씩 웃고 떠난 ‘100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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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한묵 화백 유고전

아폴로 11호 달 착륙에 영감 받아 컴퍼스-자 이용 기하학적 추상 전념

연대기별로 작품 130여 점 전시

동아일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 전시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1991년 작품 ‘상봉’.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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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대 들고 있다 씩 웃고 간다.”

한묵 화백(1914∼2016·사진)은 2012년 백수(白壽·99세)에 생애 처음 발간했던 화집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다. 당시 그는 화가로서 행복했냐는 질문에 “난 죽음 가운데에 있고, 그러면서 살고 있다. 때가 오면 가는 것이고 심각할 게 없다”고 했다. 4년 뒤 2016년 11월 한 화백은 프랑스 파리 생투앙 병원에서 숙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한 화백의 첫 유고전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가 열리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대기별로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1970∼90년대 드로잉 37점은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작품. 10년에 한 번가량 개인전을 열 정도로 노출이 적었던 한 화백은 이번 유고전이 개인전으로 최대 규모다.

한 화백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동양화를 배우고, 10대 후반부터 서양화에 관심을 가졌다. 만주,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금강산에도 머물며 작업을 했다. 이때 이중섭 화백과도 절친하게 지내, 그가 병상에 있을 때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다고 알려진다. 이후 미대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61년 프랑스로 떠나 조용히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목격한 무렵 작품세계에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1972년 판화 공방에서 동판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컴퍼스와 자를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화를 그렸다.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는 한 화백은 “2차원인 화폭에 3, 4차원을 담는 고민을 했고 그것이 일생의 화두가 됐다”고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1970년대 대규모 작품들이다.

작품만 보면 1960년대에도 있었던 ‘옵아트’와 큰 차이가 보이진 않는다. 옵아트는 보색대비나 규칙적인 기하학적 형태의 배열을 통해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예술. 대표적인 작가로 브리짓 라일리가 꼽힌다. 다만 한 화백 작품에선 타지에서 고유의 시각언어를 찾으려는 절실함이 배어난다. 전시를 기획한 신성란 큐레이터는 “한국에서의 활동이 많지 않아 대다수 관객은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신선하게 느낀다”며 “돈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작업했던 작가이기에 ‘맑은 기운’을 받아간다는 반응도 많았다”고 전했다.

3월 9일 열리는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한 화백 작품의 미술사적 의미를 짚어 보는 시간도 갖는다. 3월 24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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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추상’ 1977년 作.


▼ 佛서 함께 활동한 이응노 30주기… 인사아트센터 ‘원초적 조형본능’전

한편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는 또 다른 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의 ‘원초적 조형본능’전이 열린다. 이 화백은 올해 프랑스로 건너간 지 60년, 작고 30년을 맞는다. 1957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을 통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된 것을 계기로 이듬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번 전시는 1960, 70년대 ‘문자 추상’ 작업을 중심으로 70여 점을 선보인다.

이 화백은 프랑스로 간 직후 파리 화단에서 유행했던 콜라주 기법을 활용해서 폐자재에 수묵 담채로 그림을 그렸다.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려 한자와 한글을 접목한 수묵, 유화, 태피스트리 등 ‘문자 추상’으로 발전시킨 것이 특징이다. 전시는 장르와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든 이 화백의 열정을 보여준다. 다음 달 10일까지. 3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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