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서강대 교수 '기억 전쟁' 출간
"과거사 끄집어내 성찰하고, 성찰의 기억 지켜야"
글렌데일 소녀상과 김복동 할머니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 글렌데일. 인구가 약 20만 명에 불과한 이곳에 2013년 한국 이외 지역 중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다.
가주한미포럼은 그해 7월 30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서 동상 제막식을 열고 일본 정부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지난 28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도 참석했다.
수많은 외국 도시 가운데 한국과 특별한 인연도 없는 글렌데일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 중심주의 시각을 거부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트랜스내셔널 역사를 지향하는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신간 '기억 전쟁'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글렌데일의 민족 구성에서 찾는다.
글렌데일에는 해외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있는데, 주민 중 40%가 아르메니아계로 알려졌다. 아르메니아인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집단학살을 당한 '기억'이 있다.
소녀상 제막식 당시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생존자 후손이자 글렌데일 시의회 의원인 자레 시나얀은 "갈등을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오늘날까지 (가해자들은) 사과가 없고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처는 깊고 또 곪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마도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이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아인들로 하여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며 "강력한 아르메니아 공동체가 지지하지 않았다면 글렌데일에 소녀상을 세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글렌데일에 마련된 평화의 소녀상은 특정 민족의 기억을 넘어 트랜스내셔널한 보편 기억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역사학자에서 '기억 활동가'로 변신을 모색하는 저자가 중시하는 가치가 이 같은 기억의 연대다.
저자는 "역사가 공식적 대화라면 기억은 친밀한 대화"라며 "역사학 방법론이 문서 기록을 근거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심문하고 재단하는 데 치우쳐 있다면, 기억 연구는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해서 그들의 원통함을 달래는 데 힘을 쏟는다"고 말한다.
그는 숫자로 가득한 사료보다 개인의 생생한 증언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에 근거한 실증주의 연구 방법론을 채택한다면 사료가 중요할 수 있지만, 과거에 벌어진 복잡한 양상을 추적하려면 기억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에 기반한 역사학에서 중국 난징 대학살 희생자 수는 30만 명이 정설이다. 저자는 중국이 '30만 명 희생'을 못 박은 데에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해자보다 많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에서 숫자는 '누가 희생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할 때 하나의 근거가 된다고 지적한다. 우리 민족이 더 많이 죽었기에 가해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해 역사적 우위에 있다는 시각은 수치 중심적 사관의 결과다.
그러나 역사는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20세기 초반 역사에서 한국인과 유대인은 피해자, 일본인과 독일인은 가해자라는 도식적인 견해는 자칫 개인을 매몰시킬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한나 아렌트가 '집합적 유죄'라는 개념에 단호히 반대했다면서 "죄의 유무는 그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저지른 일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극히 상식적"이라고 역설한다.
이어 전후 세대를 향해 "곤혹스러운 과거 앞에 당당한 사람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의 기억 문화가 더 건강하다"며 "과거사를 끄집어내 성찰하고 또 그 성찰의 기억을 지키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조언한다.
휴머니스트. 300쪽. 1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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