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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사라진 '지식인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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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한수 Books팀장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일제강점기 월간 잡지 '삼천리'는 1934년 6월호에서 당대 유명 여성에게 묻습니다. 화가 나혜석은 "여성단체를 조직하여 통일적 사상과 행동을 갖도록 하겠습니다"고 답합니다. 소설가 이선희는 "딴스홀을 한 100여 소에 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잡아내어 춤을 추게 하지요" 했네요. 미국 컬럼비아대 석사 황애시덕은 "서울에 유곽을 철폐하는 동시에 일체 유흥배를 엄중 단속하겠어요"라고 말합니다.

당시 이분들이 서울시장 될 가능성은 0%입니다. 일제강점기 서울시장(경성부윤)은 35년간 18명이었는데 모두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선인 여성이 서울시장이 될 리 있나요. 불가능한 일을 서로 묻고 답하면서 '지적 유희'를 한 것이지요. '삼천리'는 당대 유명 인사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받은 답변을 지면에 실어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있거나 망명했을 때 아내의 수절 문제' '여학생 스커트는 짧게?' '약혼 중에 몸을 허락함이 죄일까?' 등등.

조선일보

이런 질문도 있네요. '노벨상이 조선에 온다면 누가 받을까?' 이광수는 "나 자신이라고 하여 두리까. 껄껄" 했고, 김동인은 "조선 사람으로 받을 사람이 있다 하면 당연히 나이다" 했습니다.

'삼천리'는 시인 김동환이 1929년부터 1942년까지 발행한 대중잡지입니다. 때로 진지하고 때로 시답잖은 질문을 유명 지식인에게 던지는 '앙케-트'를 거의 매달 실었습니다. 독자들은 '지식인 아이돌'의 사생활을 엿보는 쾌감을 느꼈겠고요. 신간 '삼천리 앙케-트'(만복당)는 옛 잡지에서 이런 질문과 답변을 모았습니다.

[이한수 Books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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