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본연의 매콤함 활용
설탕·소금 쓰지 말고 요리
속 쓰릴 정도 강한 맛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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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은 일종의 통증이다. 매운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얼얼한 감각이 지배한다. 고추·마늘·생강·후추 등 매운맛을 내는 식재료는 맛을 감별하는 미각이 아닌 통각을 자극한다. 따라서 자극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알리신·피데린 성분은 온도·통증을 감지하는 감각수용체(TRPV1)와 결합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유도하면서 지방 감소, 스트레스 완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고통 줄이는 호르몬인 엔도르핀 만들어
매콤한 음식이 건강에 긍정적인 요소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지방 분해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발열 반응으로 땀을 흘린다. TRPV1이 활성화하면 몸에 쌓인 백색 지방이 열을 내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갈색 지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량도 늘어 몸속 지방을 연소시킨다.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열·땀이 많이 나면서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체중이 덜 증가한다”고 말했다. 2003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여대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다른 조건을 같게 한 다음 8주 동안 한 그룹에만 캡사이신 추출물을 먹게 했다. 그 결과 캡사이신을 섭취한 군에서만 유의미한 지방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복부 지방과 엉덩이·허리 둘레가 유의미하게 줄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캡사이신의 지방 감소 효과가 30%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둘째로 매운맛은 기분을 좋게 한다. 매콤한 음식을 먹으면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활성화하면서 가벼운 통증이 생긴다. 그런데 이 통증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몸은 고통을 줄이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을 만들어낸다.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돼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매운맛의 매력이다. 스트레스로 지쳤거나 우울할 때 유독 낙지볶음·떡볶이·라면 같은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안이 화끈거리고 땀·눈물·콧물을 흘리면서도 매운맛에 빠져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캡사이신 소스는 건강한 매운맛과 무관
마지막으로 소화를 도와 더부룩한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매운맛은 위산 분비를 촉진해 소화 효소를 활성화한다. 소장·대장의 연동운동을 자극해 소화를 돕는다.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김용석 교수는 “까스활명수·까스명수·위생천 등 생약 소화제에는 공통적으로 고추나 알코올을 이용해 고추 캡사이신 성분을 뽑아낸 고추 팅크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매운맛을 내는 핵심 요소들이다.
매운맛도 잘 먹는 법이 있다. 가급적 식재료에서 얻은 매운맛을 활용한다. 적은 양으로 자극적인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소스는 단순히 맵기만 할 뿐이다. 식재료 본연의 영양·식감을 살리지 못하는 데다 유화제·보존제 등 식품 첨가물이 들어 있어 건강한 매운맛과는 거리가 있다.
아무리 좋아도 과하면 탈이 난다. 극단적으로 맵게 먹으면 소화기관을 자극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 속이 쓰리거나 설사를 할 정도로 강한 매운맛은 삼간다. 이는 몸에서 부담을 느낀다는 신호다. 이기원 교수는 “매운맛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매운 음식을 과도하게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람마다 매운맛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맵기의 강도나 매운 음식을 먹는 양·횟수를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렵다.
매운 음식을 요리할 땐 설탕·소금 사용을 자제한다. 매운맛을 느끼는 통각은 공교롭게도 뜨거울 때 극대화된다. 그런데 뜨거우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매운 음식을 조리할 때면 더 짜거나 달게 된다. 뜨겁고 맵고 짜고 단 자극의 향연이 되는 것이다. 소금의 짠맛은 위를 자극하고, 설탕의 단맛은 체중을 늘린다. 과식하기도 쉽다. 매운맛을 중화하기 위해 밥을 더 먹거나 식후에 달달한 음료를 마셔 칼로리 섭취량도 늘어난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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