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집을 출간한 전남 곡성군 서봉마을 ‘길작은도서관’의 할머니들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시인 할매’. 할머니들이 마을 담벼락에 시화를 그리고 있다.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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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의 한 영화관.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꽃분홍색 경량 패딩 점퍼를 입은 할머니 두 명이 무대 위 단상에 앉았다.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 할매’의 주인공들이다. 긴장한 듯 눈을 깜빡이던 윤금순 양양금 할머니는 “말주변이 없으니 이해해 달라”며 “글을 배워 이 자리까지 오게 돼 영광스럽다”고 했다. 》
출발은 2016년 발간한 ‘시집살이 詩집살이’였다. 이 시집에 수록된 124편의 시는 전남 곡성군 서봉마을의 ‘길작은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운 ‘할매’들의 작품. 시집을 보고 짠한 감동을 느낀 이종은 감독이 마을을 직접 찾아갔다. 할머니들은 “다 늙은 사람을 뭐 하러 찍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제작진은 마을에 떡을 돌리며 간곡하게 협조를 구해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시인 할매’에서 시 쓰는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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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김막동(84), 김점순(80), 박점례(72), 안기임(85), 윤금순(82), 양양금(72), 최영자 할머니(87), 그리고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길작은도서관’의 김선자 관장이다. 평균 연령 80세에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 처음 한글을 알게 된 할머니들의 사연은 별다른 꾸밈이 없어도 반짝반짝 빛난다.
양양금 할머니의 시는 “동생들만 키우니라고(키우느라) 학교를 안갔다”, “글자도 모른 것이 까분다해 기가 팍 죽었다”거나 “천국에 있는 난편(남편)에게 나 잘살고 있다고 쓰고 싶다”고 한다. “손지들(손자들) 사랑한다”고 한 ‘가점댁’ 도귀례 할머니의 한 줄 시도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나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니기들은(너희들은) 고생하지 말아라”는 박희순 할머니의 시를 본 딸은 “엄마 너무 예쁘게 시를 적었다”며 눈물을 훔친다. 삐뚤삐뚤한 글씨를 통해 평소 표현하지 못하던 가족에 대한 마음을 치장 없이 진솔하게 꺼내는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무공해 힐링’을 표방한 영화로, 할머니들이 직접 쓴 시가 화면에 오버랩되고, 각각의 사연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특별한 연출이나 서사가 없어 다소 투박하지만 아련하고 푸근하다. 음악이나 드론 촬영 장면이 길다는 지적에 이 감독은 “작업을 하며 과도하게(?) 영화에 몰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인디플러그·더피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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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맛쇼’ ‘쿼바디스’ 등을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새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비슷한 소재를 좀 더 유쾌하게 담는다.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배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박금분(89), 곽두조(88), 강금연(85), 안윤선(82), 박월선(89), 김두선(86), 이원순(82), 박복형 할머니(87)의 왁자지껄한 하루를 보여준다. 고스톱을 치고 운동도 하고, 텔레비전도 같이 보는 할머니들의 하루는 삭막한 도시보다 훨씬 활기가 넘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할머니들은 “이제라도 배우니 더 재미있다. 영어도 한번 해보자”고 외친다. 27일 개봉.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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