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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여성 4명중 3명 "낙태 합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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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사회硏, 조국 수석 지시로 1만명 대상 온라인 조사

조선일보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만 15세~44세) 네 명 중 세 명(75.4%)이 인공 임신중절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 9~10월 전국 해당 연령 여성 1만명을 온라인으로 조사한 결과다.

우리 정부는 과거 2005년과 2011년에도 낙태 실태조사를 했다. 이번이 최대 규모다. 문항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여성들의 행동도, 가치관도 지난 조사 결과와는 크게 달랐다.

낙태하는 사람이 달라졌다

8년 전 조사 때는 법적 부부와 동거 커플을 합친 '기혼 여성'(57%)이 미혼 여성(43%)보다 낙태를 많이 했다. 연령별로는 30~34세 여성(23%)이, 학력별로는 고졸 이하(49%)가 많았다.

반면 이번 조사에선 미혼 여성(47%)이 늘고, 기혼 여성(51%)이 줄었다. 또 대졸자(67%)가 고졸 이하(20%)나 대학원 이상(13%)보다, 도시(86.2%) 지역이 농어촌보다 낙태를 많이 했다. 연령별로는 25~29세 여성(30%)이 가장 많았다. 임신중절 이유로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란 답이 가장 많았다.

낙태 건수가 감소하는 흐름도 뚜렷했다. 인공 임신중절률(인구 1000명당 임신중절 건수)이 2005년 30%에서 2011년 16%로, 올해는 다시 5%로 떨어졌다. 연간 인공 임신중절 건수도 34만건에서 17만건으로, 다시 5만건으로 급감했다.

이소영 연구위원은 "피임 실천율과 응급(사후) 피임약 처방 건수가 증가한 점, 15~44세 여성 인구가 감소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현실 정확히 반영하나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간 낙태 건수가 5만건이라는 이번 조사 결과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연간 낙태 건수를 17만건으로 추정했다. 의료계는 "그것도 너무 적은 수치"라고 반박해왔다. 2017년 연세대·배재대 연구팀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연간 낙태 건수가 최대 50만건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과거 조사 때는 각각 고려대·연세대 연구팀과 해당 대학병원이 참여했지만, 이번 조사는 일반인의 온라인 응답에만 의존했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온라인 익명 조사라 해도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밝히기를 주저한 여성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 수석, 어떤 답 내놓을까

우리 모자보건법은 성폭행으로 임신했거나, 부모에게 유전병이 있거나, 산모의 생명이 위독한 경우 등을 빼면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라"는 종교계의 주장도 거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정재오 신부는 "여성이 본인의 삶을 살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지, 낙태가 답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성계와 일부 학계는 "여성의 선택권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황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2017년 11월 청와대에 낙태죄 폐지 청원(23만5372명)이 밀려들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실태 조사를 통해 현황과 사유를 파악하겠다"고 답하면서 시작됐다. 조 수석은 이날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복지부는 일단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헌재는 2012년 낙태 처벌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7년 불법 낙태수술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또다시 헌법 소원을 내,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다음 달 말 최종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강호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조사 결과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그 뒤의 이야기"라고 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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