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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강민석의 시선] ‘망언’ 이후가 더 문제였던 ‘망언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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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없는 김진태, “저 없으면 재미없을 것” … 김순례는 색깔공세

이종명은 계속된 북한군 개입설 검증요구 … 진솔한 사과 그렇게 어렵나

중앙일보

강민석 논설위원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잘못을 하면 보통은 사과라는 걸 한다. 물론 망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잘못’의 범주에 속하진 않는다. 누구나 망언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사과도 더욱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5·18 망언 3인방은 어땠나.

망언 파동 엿새 뒤였던 지난 14일 자유한국당의 첫 합동연설회. 당 대표에 출마한 김진태 의원의 연설 일부다.

“…인생 왜 이렇게 파란만장하나. 여기 오는 중에도 ‘야, 너 오지 말고 돌아가’라 할까 봐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당 윤리위)징계는보류된 거다. 만약 김진태가 당 대표가 되지 않으면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가끔 심장이 좀 쫄깃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저 없으면 재미없을 걸요.” 도대체 ‘재미’란 말이 나올까.

망언 후 그의 첫 반응은 “난 공청회에 가지도 않았는데 왜 이 난리냐”였다. 정말 왜 난리인지 몰라서 한 말인가. 공청회에서 극우 인사 지만원 씨는 “5·18은 북한군 특수군 600명의 게릴라전이며, 광주는 북한 안마당이고,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망언도 망언이거니와, ‘병리적’으로 보인다. 그런 그를 국회로 초청한 장본인이 김 의원이다. 공청회엔 영상 메시지란 걸 보내 ‘존경하는 지만원 박사님’ 운운하며 “5·18 문제 만큼은 우파가 물러설 수 없다”는, 모든 걸 좌파 우파로 해석하는 편리한 역사관도 드러냈다. 하지만 공분을 일으킨 이벤트의 주최자면서도 그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날 연설회엔 김순례 의원도 단상에 올랐다. 그는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김진태 당 대표, 김순례 최고위원이란 그림이 나올지 궁금하다.

김순례 의원은 “종북좌파가 5·18 유공자란 ‘이상한 괴물’을 만들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2월 8일)면서 9일 아침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9일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설마 사과하러 나온 것은 아닐테고 웬일인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최고위원 출마선언을 하러 나온 것이었다. 망언 바로 다음 날, 사과는 커녕 그는 출마선언을 했다. 사흘 뒤인 11일(월)에야 사과란 단어가 들어간 입장문을 냈다. 유공자 전체를 괴물이라 할 땐 언제고, 이번에는 ‘허위 유공자’를 가리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마치 가짜 유공자가 떼로 실존하고 있는 것처럼…. 이걸 진솔한 사과라 할 수 있는 걸까.

중앙일보

김진태 의원 등은 5ㆍ18 유공자 명단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미 광주 5ㆍ18기념공원내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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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저지를 땐 언제고 연설회에서 그는 “제가 매일 죽고 또 죽고 있다. 살고 싶다. 여러분 살려달라”며 당원 표심에 기댔다. “내년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막지 못하면 ‘고려인민공화국’으로 간다”고도 했다.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나 싶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아니고 ‘고려인민공화국’이라니…. ‘고려연방제’를 말하고 싶었던 건진 모르겠는데, 고려인민공화국은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망언 이후 꺼내 든 게 그런 색깔론이다.

이종명 의원은 “5·18사태라는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5·18폭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지났으니 다시 뒤집을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라고 한 지 나흘 뒤인 12일에야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사과문도 아니고, 협박문도 아닌, 왜 냈는지 의아할 따름인 입장문이었다. 그는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는 매우 송구하다”면서도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승복력 있는 검증, 그리고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동시에 주장했다. 송구하다면서도 주렁주렁 조건만 달아놓았다. 그것도 이미 허무맹랑한 소리임이 판명난 내용(북한군 개입), 법원이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불가하다고 판시(명단공개)한 내용이었다.

망언 이후 3인방이 입을 맞춘 듯 요구하는 게 5·18 유공자 명단 공개다. 도대체 유공자 명단을 왜 그리 보고 싶은지 알 수 없지만, 정 궁금하다면 광주 서구에 있는 5·18 기념공원을 한 번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하길 권한다.

공원 내 지하 추모공간 한쪽 벽에는 4296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있다. 2005년까지의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부상자 명단으로, 그들이 보고 싶은 명단과 거의 같을 것이 분명하다.

1996년 8월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 30부는 피고인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반란수괴죄, 내란죄 등은 물론 ‘내란목적 살인죄’를 인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이듬해 3월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그의 수많은 죄목 가운데 핵심이 바로 내란목적살인죄다. 형법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행위’로 정의한다. 그곳에 가면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쿠데타 세력에 의해 피를 흘린 시민 이름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공수부대의 총탄과 대검에 숨져간 임신 8개월의 임산부, 물놀이하던 초등학생, 헌혈하던 여고생 이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5·18이 광주만의 아픔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시대를 같이 지나온 또 다른 많은 이들에게 슬픔이면서 분노인지, 부끄러움이면서 아직 마음에 남은 부채인지 그 명단을 보면 망언 3인방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양심이 ‘코마 상태’에 빠져있지만 않다면….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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