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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안보 불안 폴란드 "親美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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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다 대통령 "미군이 영구 주둔하면 20억달러 부담하겠다" 구애

4억달러 규모 美무기 구매하고 화웨이 임원도 간첩 혐의로 체포

조선일보

두다 대통령


지난 13일(현지 시각)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근교 공군 기지. 폴란드 정부가 4억1400만달러(약 4658억원)를 들여 미국의 포격로켓시스템(HIMARS)을 사들이는 서명식이 열렸다. 미국과 폴란드 국기가 배경으로 놓인 연단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올랐다. 그가 "미국은 폴란드와 함께하고 있고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라고 말하자, 폴란드 장병들은 열렬히 박수를 쳤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연단에 올라 "미국과 폴란드는 강력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폴란드가 미국에 지극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장면도 연출됐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이란 제재 문제를 주(主) 의제로 하는 중동 문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미국에서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출동했지만 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은 미국이 독자적인 중동 정책을 고집하는 자리로 여겨 장관급 인사를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는 미국에 장소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콘퍼런스 공동 주최국으로 나서며 적극 협력했다.

폴란드의 적극적인 친미(親美) 행보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폴란드 정보 당국은 중국 화웨이의 유럽 중·북부 판매 총괄 임원인 왕웨이징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기술 전쟁에서 핵심으로 여기는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 화웨이를 억제하려는 움직임에 호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폴란드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폴란드의 확실한 '친미 노선' 줄서기는 오랜 역사 경험에서 나온 생존법이다. 폴란드는 서쪽의 독일, 동쪽의 러시아로부터 잦은 침략을 당했다. 1795년부터 1차대전 종료 시까지 123년간 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 3국에 점령당해 지도상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2차대전 초기인 1939년에도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동서로 나눠 통치했다.

최근 들어 이런 옛 역사가 재현될지 모를 우려가 제기된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호시탐탐 서진(西進)을 노리고 있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2'가 본격 가설되는 것도 폴란드를 긴장시키는 요소다. 한층 가까워진 독·러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이다.

이런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폴란드는 미국에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군을 주둔시켜 평화를 보장받는 방안이다. 작년 9월 두다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군이 폴란드에 영구 주둔하면 20억달러(약 2조2500억원)를 부담하겠다고 했다. 폴란드 내 미군 기지에 '트럼프 요새(Fort Trump)'라는 명칭을 붙이겠다고도 했다.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 중 트럼프의 요구대로 국방 예산을 GDP(국내총생산) 대비 2% 넘게 쓰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또 프랑스·독일이 주도하는 EU 공동군(軍) 창설에 반대하며 미국의 헤게모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두다 정권의 강력한 반이민 정책 등 극우 성향도 트럼프와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폴란드 정부 핵심에는 두다 대통령을 비롯해 트럼프를 추종하는 이들이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폴란드 우파 정부가 '트럼프와의 연대'에 치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폴란드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유용한 전략 파트너다. 현재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 3만5000명이 대부분 독일에 배치돼 있지만 폴란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부를 러시아 국경에 더 가까운 폴란드로 옮기는 방안을 지난해부터 검토 중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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