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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불황에 보험 깨는 서민들 사상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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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부산의 한 설비 업체에 다니는 김모(50)씨는 최근 본인 앞으로 든 보험 3개 가운데 2개를 해약했다. 20만원 남짓 나가던 보험료 가운데 절반 정도를 덜 내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버는 돈은 제자리걸음인데, 자녀가 크면서 나가는 돈은 계속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가계부를 들여다봤지만 그나마 뭉텅이로 나가는 돈 중에서 줄일 거라고는 보험료밖에 안 보였다고 한다. 보험을 중간에 해약해 돌려받은 돈은 여태껏 부은 원금의 20~30%였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최후의 보루'격인 보험을 중간에 깨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보험을 중간에 해약하면 각종 위험에 대비할 수 없는 데다가 여태껏 낸 돈도 일부밖에 못 돌려받는다. 그런데도 이런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출을 줄이려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작년 생명보험 중도 해약 역대 최대

17일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생보사가 내준 해약 환급금이 23조676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같은 기간(20조1324억원)보다 18% 늘었다. 지난 2017년 연간 해약 환급금은 22조1086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작년에는 12월 한 달치를 빼고도 이미 그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다. 12월에도 비슷한 추이가 이어지면 작년 연간 해약 환급금은 25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작년 1~11월 생보 해약 건수 역시 2017년 같은 기간(447만4929건)보다 소폭 늘어난 462만6774건에 달했다.

가입자가 보험료를 제때 못 낸 탓에 보험 계약이 끊긴 일도 늘었다. 보험 계약이 끊긴 사례는 지난 2017년 11월 말까진 117만5359건이었는데, 작년 1~11월에는 123만1888건이 됐다. 이렇게 보험 계약이 끊겨 생보사가 가입자에게 돌려준 돈(효력 상실 환급금)은 작년 11월까지 1조5905억원으로 2017년 연간 액수(1조5573억원)보다도 많았다.

손해보험업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손보사의 장기 보험을 해약해 내준 환급금은 지난해 1~10월 9조748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8조7571억원)보다 11.3% 늘었다. 연말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 치울 것으로 보인다.

보험, 중간에 해지하면 손해인데…

보험을 해지하는 건 보통 '최후의 선택지'인 경우가 많다. 보험을 만기까지 유지하지 못하면 가입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 등을 떼어서 낸 나머지를 굴려 미래에 내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중간에 해약하면 그동안 납입한 원금보다 덜 돌려받는다. 이자는 덜 받더라도 원금만은 고스란히 돌려받는 예·적금 해약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을 깨는 사람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산업 규모가 커진 만큼 해약 환급금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을 해지하는 게 굳이 살림이 쪼들리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면서 "다른 보험 상품에 가입하려고 기존 보험을 해약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생보사가 보유한 보험 계약 규모는 2429조6753억원으로 2017년 말(2445조8345억원)보다 소폭 줄었다. 생보 보유 계약액은 관련 자료가 집계된 지난 2000년부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증가했는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장기적인 위험을 대비하기보다는 당장 한 푼 아끼려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기훈 기자(m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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