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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핫팬츠에 레이저 조명…북한 공연, 과감하고 화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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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대중문화’

‘모란봉악단’으로 시작된 변화

2012년 어깨선 드러난 의상

김정은 체제 지향·혁신 보여주며

당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 표출

‘노래하며 춤춘다’ 형식의 파격

현란한 훌라후프·탭댄스 공연

북-중 수교 70돌에 이례적 등장

새해 축하공연, 아이돌 무대 연상

영화·방송 기술도 업그레이드

동시 녹음·연속 촬영 기법 도입

화면 서체 변화·빠른 편집에

아나운서 인기 높아지며 예능까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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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9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 발사 성공 기념 음악무용 종합공연’ 무대에는 왕재산예술단의 무용 ‘륜춤’이 등장했다. ‘륜’은 훌라후프의 북한식 표현이다. 예술단원들은 서커스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현란하게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기계체조와 무용을 결합한 동작들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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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복장이었다. 여성 무용단원 7명은 탱크톱과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전까지 북한에서 볼 수 없었던 아찔한 공연이었고, ‘선정성’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무대의상이 등장했다. 이 공연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관람했다.

이 무대에는 ‘탭댄스’의 북한식 표현인 타프춤도 등장했다. 군복을 입은 남성 무용수 8명과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의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 8명이 현란한 발동작을 선보였다. 북한 가요 ‘승리의 축배’를 배경음악으로 했지만 동작은 서양 탭댄스 그대로였다.

타프춤은 올해 1월 북한 예술단의 중국 방문 공연에서도 선을 보였다.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 등이 관람한 가운데 진행된 북한 예술단의 공연은 북-중 수교 7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 차원의 초청 공연이었다. 280여명으로 구성된 북한 대표단의 규모나 참가한 예술단체의 성격으로 볼 때 역대 최대 공연이었다. 국가적 외교 차원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정치적·민족적 색채가 강한 작품으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무대에는 타프춤을 비롯해 파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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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대에서 북한 예술단이 공연한 ‘달려가자 미래로’는 어디선가 본 듯한 공연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강조국을 만들어나가자는 가사의 ‘달려가자 미래로’는 김정은 시대에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과 서울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축하공연의 복장과 율동이 이날 무대에도 그대로 등장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축하공연의 퍼포먼스가 그대로 북-중 수교 70주년 기념 무대에 오른 것이다.

최근 북한 대중음악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예술단원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무용수와 가수를 엄격하게 구분했지만 이제는 가수들이 노래하면서 춤도 춘다. ‘댄스음악’의 등장으로 무대가 생생하고 경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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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 대중음악 전체의 변화는 아니다. 북한 음악의 중심은 여전히 당과 최고지도자를 향한다. 가사에서 최고지도자와 당, 조국이 빠지지 않는다. 북한에서 예술은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이다. 가수들이라고 해서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살지 않는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은덕으로 당의 품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따라서 대중음악, 대중문화의 변화는 당의 정책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12년이었다. 모란봉악단이 신호탄이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각별한 관심과 지도’로 만들어진 악단이자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중예술단이다.

모란봉악단이 처음 등장한 2012년 7월6일의 시범공연은 김정은 체제의 지향과 혁신을 보여줬다. 엘이디(LED) 패널을 이용한 배경화면, 현란한 레이저 조명, 형광색 반짝이 미니스커트, 어깨선이 드러난 무대복과 화려한 장식은 김정은 시대 북한 대중음악의 새로운 방향성을 강렬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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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록키>의 주제가 ‘고나 플라이 나우’(Gonna Fly Now)를 비롯해 월트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이 줄줄이 연주되고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 등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미키마우스가 직접 악단을 지휘하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2014년 5월 모란봉악단의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를 위한 공연에서는 공연의 절반 정도를 서구의 클래식과 세계적 민요 메들리로 채웠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대한 개방 의지로 해석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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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1일 새해 축하공연은 처음으로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는데, 아이돌 공연이나 오페라 무대를 연상시키는 열린 무대였다. 출연자와 청중을 엄격히 구분했던 기존 무대와 달리 청중 사이에 무대를 설치해 출연자들이 청중 사이를 오가면서 노래했다.

북한 대중문화의 변화는 주로 형식 면에서의 파격에 머물고 있기는 하다. 내용의 중심은 여전히 지도자를 찬양하거나 당의 정책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형식의 변화가 보여주는 의미는 적잖다. 대중음악은 한층 경쾌해지고 밝아졌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창법도 다양해졌다. 리듬앤드블루스풍의 노래도 있고 재즈에 가까운 연주도 한다. 여전히 당의 검열을 받고 당의 노래를 하고 있지만, 최근 북한 대중음악 공연을 보면 ‘이런 것까지…’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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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변화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확인된다. 인물과 스토리 중심이던 영화에 동시녹음과 연속촬영 기법을 적극 도입해 화려한 장면이 늘었다. 이전에는 대부분 평양 중심이었는데 최근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졌다. 야외촬영이 많아져 화면에 생생한 현장감이 더해졌다. 방송에서는 아나운서의 세대교체가 눈에 띄고 이들의 복장도 세련되어졌다. 화면의 서체 변화, 빠른 편집으로 방송은 한층 세련되고 젊어졌다. 아나운서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예능을 겸하는 아나테인먼트 현상도 나타난다.

나이 든 북한 사람이라면 ‘세상 말세’라고 하거나 ‘세상 참 좋아졌네’라고 말할 것이다.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화, 다종화, 다색화’의 흐름이 대중문화의 변화로 구현되고 있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진행형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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