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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소년중앙] “초등학생 마음은 초등학생이 알아요 그걸 모아 꼬마TV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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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왼쪽부터)김고은·박경현 교사·고서현·(앞줄 왼쪽부터)명하음·김채은·한가은 학생이 각자 장비를 들거나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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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준비 때문에 바빠요. 그래도 촬영은 해야죠."

모두가 퇴근하고 텅 빈 학교에서 연신 울리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박경현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박 선생님은 지난 2013년 11월 유튜브 '꼬마TV'에 공개한 '초등학교 단편영화 딱지왕 (King Of DDACKJI) 짧은 버전'을 시작으로 5년 넘게 꾸준히 초등학생 출연 영상을 올리고 있죠. '딱지왕'은 10일 기준 약 7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김보빈 소년중앙 학생모델이 박 선생님과 꼬마TV 크루들을 인천 송천초등학교에서 만났어요. 꼬마 학생기자단과 꼬마 영화제작자들의 만남이었죠. 꼬마TV 크루는 동아리 형태로 영상 제작 과정에 참여합니다. "여학생 8명, 남학생 2명 총 10명이에요. 학원 간 친구들도 있어서 오늘은 우리 5명만 모였습니다." 5학년(열두 살) 고서현·김고은·김채은·명하음·한가은 학생이 김보빈 학생모델에게 설명했어요. 이들은 박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영상 촬영과 제작 과정에 참여하죠. "장비는 선생님이 갖고 계신 개인 물품을 써요. 오디오도 녹화하면서 바로바로 들을 수 있고 연기하면서 선생님 지도를 따라 이상한 부분은 바로 수정할 수 있죠." 연기를 맡아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명하음·한가은 학생이 김보빈 학생모델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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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담당인 김채은(가운데) 학생이 김보빈(왼쪽)학생모델에게 피사체를 잡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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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빈 학생모델이 꼬마TV 크루들 손에 이끌려 교실 가운데 카메라 앞에 섰어요. 촬영할 예정이라는 대본도 함께 읽었는데요. 명하음·한가은 학생의 대본에는 '밝게', '더 크게 말하기', '웃으면서', '손동작 크게' 등 연필로 꼬물꼬물 적어 넣은 연기 연습 흔적이 빼곡했습니다. "이거 본인이 적은 거예요?" 보빈 학생모델이 묻자 두 학생은 "그렇다"고 답했어요. "우와.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열정적으로 대본 공부를 하고 있어요." 꼬마TV 크루 중 일부는 피아노 학원도 가고 수영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세 시간, 총 여섯 시간을 영상 콘텐트 제작에 할애합니다. "수업 준비도 바쁘고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영상을 만드는 것도 교육에 좋더라고요. 학생들이 영상 콘텐트에 관심을 나날이 더 많이 가지고 유튜브에 할애하는 시간이 늘고 있어요. 그래서 저처럼 교사가 나서서 학생들과 함께 바람직하고 유익한 내용을 담은 영상물을 제작하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선생님의 열정을 증명하듯 그의 반에는 영상 제작과 재생 관련한 문의를 하는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소속된 교사로서 영상을 제작하는 건 다른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등의 이해가 필수적이에요. 다행히 제가 지금 속한 학교에서는 제 활동을 전적으로 믿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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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음·한가은·김보빈 학생모델·박경현 교사(왼쪽부터)가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날 김 학생모델은 꼬마TV 크루를 만나 활동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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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음·한가은 학생의 열정은 확인했죠. 다른 학생들은 어떨까요. "저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요. 뾰로통한 표정도 잘 지어요. 그래서 짜증 내는 역할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김고은 학생은 인터뷰를 위한 사진을 찍는 데도 부끄러워 숨곤 했죠.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기하듯 해보는 거야." 박 선생님은 김고은 학생을 부드럽게 달랬어요. 오디오 점검용 헤드폰을 귀에 끼고 촬영용 마이크를 들고 있던 고서현 학생은 대본도 쓴대요. "재밌어요. 친구들 목소리가 잘 녹음되고 있는지 시시각각 확인하다가 이상하면 손을 들어 알리죠. 그럼 다시 촬영하는 거예요. 영상물에서는 소리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 역할에 만족해요. 언젠가 제가 완성한 대본으로 친구들이 연기하는 것도 보고 싶어요." 촬영을 담당하는 김채은 학생도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요. "저는 사진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게 좋아요." 박 선생님은 학생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연기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장비를 맡은 학생 일부는 사진 찍히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요. 매번 달래고 촬영하고 그러는 거죠 뭐." 박 선생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어요. "5학년 친구 대상으로 모집해 6학년이 되는 날까지 활동해요. 총 2년 과정인 거죠. 아이들도 바쁘고 저도 교사 일이 있어서 꾸준하게 하는 게 참 힘들어요. 이 때문에 학생들의 협조가 필수죠. 그게 잘 안 됐을 때는 무산됐어요. 지금 보빈 학생모델이 만난 이 친구들은 3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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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명하음·한가은 학생은 카메라 앞에서 여러 동작을 취하거나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들은 꼬마TV 크루서 가장 열정적인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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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크루는 지난 2018년 4월 1일 게재한 '슬기로운 학교생활: 버튼의 비밀' 영상을 시작으로 28개 영상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매년 몇 개를 만든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려워요. 학생들도 바쁘고 저도 본업이 있으니 여건이 될 때마다 많이 찍어 두는 편이죠." 박 교사의 설명에 명하음·한가은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죠. "맞아요. 오늘처럼 애들이 일이 있다며 중간에 도망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다 모였을 때 빨리 찍자는 주의예요." "애들이 다 바빠요. 저는 연기하는 게 좋아서 학원 가는 날 이걸 하면 더 좋을 때도 있어요. 나중에 커서 다른 직업을 갖더라도 취미로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한가음 학생에 이어 명하음 학생이 자신의 꿈을 얘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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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김보빈 학생모델이 (왼쪽)한가은·명하음·박경현 교사에게 꼬마TV 크루 이야기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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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은 주로 선생님이 만들지만 어떤 주제를 할지 학생들과 기획 회의를 합니다. 액체괴물·딱지 놀이 등 학생들이 당시 유행하는 것을 말하면 선생님이 의견을 덧붙여 대본을 완성하는 형식이에요. '딱지왕'처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콘텐트를 만들기도 하죠. 대본 없이 학생들의 애드립만으로 채운 영상도 있고요. 지난 2월 8일 업로드된 '고민상담소 3화 2부: 학생들만으로 고민상담소가 될까? 근데 더 재밌네'가 애드립으로 채운 최신 영상이죠. 여기서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알아서 댓글을 읽고, 고민에 답을 합니다. 카메라 촬영, 출연, 내용 모두 학생들이 즉흥적으로 꾸린 건데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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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김보빈 학생모델이 (오른쪽)한가은·명하음·박경현 교사에게 꼬마TV 크루의 콘텐트 제작 과정에 대해 배우고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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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의 고군분투는 열매도 맺었습니다. 2013년 인천시 초등학교 영상제 대상, 2016년 인천시 흡연예방UCC대회 지역대회 우수상에 이어 전국안전뉴스UCC대회 지역예선 1위, 2018년 인천어린이촬영대회 1등, 인천양성평등UCC대회 우수상 등 좋은 성과를 냈죠. "상을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영상 제작은 학생들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동기 부여도 되고 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다루니 창의력도 늘어납니다. 토론에 적극적인 인재로 자랄 기회가 되기도 하죠." 박 선생님은 학생들이 유튜브 채널 영상물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해요. "일부 자극적인 영상과 거짓 정보가 많잖아요.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놀랐죠. 아이들이 자라는 데 악영향을 주는 그런 영상을 보는 건 자기들의 얘기를 다루는 채널이 적어서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거리낌 없이 눌러서 볼 수 있는 채널 콘텐트를 만드는 게 제 목표인 셈이죠. 게임방송 위주로 시청하는 초등학생 유튜브 시청 문화도 바꾸고 싶어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물을 앞으로도 계속 촬영할 생각입니다. 또, 아이들이 올바르지 않은 영상물을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방법도 가르치고 있어요. 일종의 '미디어 리터러시'죠. 교실에서 자극적인 영상을 잠깐 보여준 후 문제를 꼼꼼하게 지적해요. 그럼 아이들이 거부감을 갖고 문제 채널은 피해서 시청하더군요."

박경현 선생님과 꼬마TV 크루가 소개하는 '우리만의 영상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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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 회의를 해요. 어떤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최근 친구들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의견을 주고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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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생님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제를 잡아 칠판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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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본을 작성해요. 선생님이 대부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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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은 학생은 사진 찍히는 건 싫지만 누군가를 찍는 것은 좋아한다. 이 성향을 백분 살려 꼬마TV 크루서 영상 촬영,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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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본을 바탕으로 촬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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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촬영하면서 소리가 잘 녹음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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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선생님이 퇴근 후 집에서 편집합니다. 편집을 할 수 있는 학생이 있지만 컴퓨터가 없어 선생님이 도맡아 하죠.

학생모델 취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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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김보빈 학생모델은 그보다 어린 학생들이 동영상 콘텐트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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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빈(인천 용현여중 2) 학생모델

취재를 하면서 초등학교에 영화 제작 동아리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친절하게 지도하시는 선생님과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친구들도 멋졌죠. 회의를 통해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대본을 짜고 연기·촬영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어요. 방송 장비를 지원해주시고, 영상 편집을 직접 하시면서 친구들을 이끌어주시는 담당 선생님의 열정적인 태도도 본받고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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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학생모델과 꼬마 영화 제작자의 만남이 이뤄진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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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운영하는 꼬마TV 유튜브 채널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제작했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 높은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어요. 단순한 재미만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닌, 뜻깊은 교훈을 주는 영상도 많이 볼 수 있답니다. 의미 있는 취재를 하도록 도와준 훌륭한 꼬마 영화제작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친구들, 항상 응원할게요.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보빈(인천 용현여중 2)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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