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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학교의 안과 밖]SKY 캐슬, 세습되는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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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성적이 좋고 남자친구까지 있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여학생이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도 이만하면 자녀의 학교생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늘 불안해 보이고 자주 아프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집에서 휴대폰을 압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외모도 가꾸어야 하고 이성친구도 두고 싶어 한다. 내신과 수능에 대한 압박, 늦은 밤까지 학원수강에 이어 적당한 이성친구까지 사귀어야 하니 에너지가 남아날 리가 없다.

경향신문

외모까지 능력의 일부처럼 되어버려 젊은 여성들은 적금을 들어 성형수술을 하고 결혼을 하면 배우자나 자녀가 자기 능력의 징표가 된다. 이제 어떻게 해서든지 없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을 배워야 할 지경이 되었으니 삶의 어디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추구하는 기쁨을 만날 것인가?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능력주의가 모든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혐오와 비난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못나서 그래.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래. 그러니 밖에 나오지 말고 집에만 있어.” 그런데 이 능력이라는 것이 갈수록 혼자 노력으로는 불가능해서 부모를 잘 만나 태어날 때부터 최고의 사교육과 문화적 혜택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또다시 ‘SKY 캐슬’의 주인이 된다. 드라마에서처럼 능력은 3대에 걸쳐 세습되고, 캐슬의 자녀들은 부모의 뒤를 이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온갖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하지만 드라마 속의 예서가 자퇴를 하고 수능을 본다고 해서 이미 기울어진 시험장이 평평해지지는 않는다. ‘입학할 때 4등급이면 수능에서도 거의 4등급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 고3 교사들 사이의 정설이고 보면 시험성적으로 한줄 세우고 그것이 곧 선발로 이어지는 지금의 교육은 다른 능력에 대해서는 평가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캐슬 바깥에 있는 대다수 학생들을 외면하고 있다. 돈 많고 학벌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나의 불운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면, 그 불운을 극복할 만큼 네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언제나 우리의 결론이 된다면, 우리는 교육의 어디에서 공정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내 자식이 잘되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나 절실하며 소중하다. 공교육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막중하다.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고학년이 될수록 자기 삶의 길을 발견하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며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관심 있는 과목을 배우면서, 다양한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한다. 그에 맞는 평가 방법으로 자신의 성장을 옆 친구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별로 일정한 성취 기준에 비추어서 평가하는 내신 절대평가 방법도 더 많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공정성이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모든 아이들을 배움과 평가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을 때 시작된다. 모든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에 필요한 역량도 하루아침에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 길을 가는데 돌부리가 있다면 골라내고, 가시덤불이 있다면 베어내면서 함께 가면 된다. 그것 때문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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