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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정태인의 경제시평]수소경제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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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은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최고기술을 지닌 대기업이 특정 기술궤적과 상용화만 고집하다가(lock-in) 몰락한 사례는 기업사에 흔전만전이다. 예컨대 개인용 컴퓨터 기술도 가지고 있었지만 메인프레임(대형 컴퓨터)에 집착했던 IBM은 그만 서비스 업체가 되었고 애플이 컴퓨터 업계를 호령한 바 있다. 테슬라가 거대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을 제치는 사례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지난 1월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고 내 주위는 “미친 짓”이라는 비판으로 가득 찼다. 수소경제는 바야흐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미래경제의 핵심+친환경 에너지혁명”(p1)을 불러일으킬 텐데도 말이다. ‘에너지 자립, 분산형 에너지, 친환경적 경제’에 생태운동 쪽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다니,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보고서의 ‘수소차’ 역시 전기차다. 다만 배터리로 모터를 돌리는가(Battery Electronic Vehicle), 연료전지로 모터를 돌리는가(Fuel Cell Electronic Vehicle)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연료전지’라는 번역 역시 배터리를 연상시키지만 이 장치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서 전기를 만드는, 소규모 발전소다. 어차피 전기로 가는 차라면 왜 굳이 수소를 싣고 다니면서 한번 더 발전을 하는가가 수많은 비판 중 핵심이다. “우주물질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지만” 수소는 물에, 그리고 메탄과 같은 가스 속에 화합물로 존재한다. 여기서 수소를 추출하려면 열이나 빛, 전기와 같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을 전기분해(수전해)하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메탄을 개질(reforming)하려 해도 열에너지가 필요하다. 현재 생산되는 수소의 96%는 화석연료(천연가스, 원유, 석탄)에서 추출되며 오직 4%가 수전해인데 여기 들어가는 에너지 역시 대부분 화석연료에서 나왔을 것이다. 최초의 에너지원이 화석연료라면 수소의 생산과 두 번째 발전에 들어가는 전기만큼 수소차는 반환경적이다(이 보고서는 암묵적으로 부생수소-암모니아 생산 등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수소-를 사용하면 되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데, 그 자체도 의심스럽지만 이 보고서가 실은 수소차만 염두에 두었다는 증거다).

수소와 전기는 똑같이 에너지 담지자지만 수소는 전기와 달리 에너지 저장수단이 될 수 있다. 수소경제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용되지 않은 전기는 곧바로 사라지고 현재 배터리에 담을 수 있는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재생에너지, 특히 풍력에너지는 불규칙하게 전기를 생산하므로 장차 이 에너지원으로 상당량의 전기를 생산한다면 때에 따라 많은 전기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때마다 이 전기를 수소 생산에 사용한다면 필요할 때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수소경제를 대중화한 리프킨이 극찬했던 것도 바로 이 ‘녹색수소’이다.

즉 대통령 보고서가 ‘수소차 활성화 로드맵’이 아닌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이라면 녹색수소의 생산과 저장, 운반과 배송의 로드맵이어야 했고, 특히 재생에너지에 의한 수소 생산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늘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생태 쪽의 비판은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원자력 발전에서 수소를 얻는 방안을 검토했고, 현 정부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를 거론하고 있다. 양자 모두 당장 어디에 지을 것인가가 문제이고 그 이후엔 이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생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원에서 전기를 얻는 방법은 지역마다 다르다. 정부가 제대로 수소경제를 만들려면 지역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가장 바람직한 재생에너지원 믹스를 찾아내 분산 발전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수소를 압축하거나 액화해서 운반할 수 있다면 무인도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전국 곳곳에 부생수소 충전소(수소주입소)를 지어 수소차에서 앞서가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전기 인프라는 200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보완되어 왔다. 한성에 전기가 들어온 지도 120년이다. 수소 인프라를 단기간에 그만큼 갖추는 건 매우 어렵다. 다행히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수소차도 전기차다). 그런데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현대기아차가 한정된 자원을 수소차의 특유한 장치 개발에 쏟아부었는데 기술궤적이 기존의 전기차 쪽으로 전개된다면, 예컨대 다른 나라에는 수소차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바로 위기에 빠질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테슬라가 없다.

수소차만을 위한 인프라가 아니라 수소경제 전체에 이용할 수 있는 범용인프라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소를 싸게 생산, 저장, 운반할 수 있게 된다면 운행거리와 출력 면에서 강점을 지닌 수소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재생에너지원의 충분한 확보와 전기분해기술의 고도화가 수소경제를 위해서도, 결국 수소차를 위해서도 먼저 추진해야 할 일이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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