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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하석상대' 카드수수료 정책… 결국 피해는 소비자몫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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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살리기의 결과는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 인상?

세계일보

하석상대(下石上臺).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고,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괸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들러맞춤을 이르는 말이다.

정부가 지난 1월말부터 카드 수수료 관련 추가 대책을 통해 우대수수료율 적용구간을 연매출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으로 확대한 ‘소상공인 및 영세업자 살리기’ 정책의 불똥이 대기업으로 튀는 분위기다. 정부의 카드수수료 정책이 결국 하석상대와 같은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18일 카드업계 등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연매출이 500억원을 넘는 대형가맹점에 다음달 1일부터 수수료율을 올리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달 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업계측은 대형가맹점을 상대로 한 카드 수수료율 인상이 3년마다 진행하는 적격비용(원가) 재산정에 따른 수수료율 조정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부가서비스 적립·이용과 직접 관련된 가맹점에 비용을 부과하고 마케팅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상한의 차등 구간을 세분화하겠다고 했다. 이는 기존에 할인, 포인트 적립 등으로 발생한 마케팅비용을 전 가맹점에 고르게 부과했다면 실제 마케팅이 진행된 가맹점을 선별해 비용을 청구하라는 의미다. 예컨대 카드사가 5% 할인 혜택을 주는 마케팅을 진행할 경우 대부분 고객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이 혜택을 누리는데 중소 가맹점이 대형가맹점과 똑같이 관련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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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최근 마케팅 비용률 상한의 적용 구간을 2단계에서 3단계로 세분화하면서 500억 초과 구간은 기존 0.55%에서 0.8%로 올렸다. 즉, 카드 수수료율이 0.25%포인트 인상될 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이번에 카드업계가 대형가맹점에 보낸 인상안도 0.2%포인트 내외 수준이다. 대형가맹점의 평균 수수료율은 2016년 기준 대형마트 1.96%, 백화점 2.04%, 통신 3개사 1.8%이다.

카드사들의 이런 수수료율 인상 방침에 대해 대형 통신사들을 중심으로 불만과 반발 움직임이 보인다. 한 대형 통신사는 수수료율 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담은 공문을 카드사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인하로 인해 보는 손해를 대기업을 통해 메우려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카드 결제액 비중이 매우 높은 대형마트도 이번 인상 방침에 울상을 짓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안 그래도 최근 유통업계 영업이익율이 최저임금상승이나 주말영업제한 등의 영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카드 수수료율마저 인상된다면 더욱 상황은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카드사들의 대형가맹점 수수료율 인상은 정부가 카드 수수료를 통해 소상공인-영세업자를 살리려 하는 정책 자체에서 오는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상공인 및 중소 가맹점을 살리겠다며 세 번이나 카드 수수료를 인하했다. 그 결과 전국 카드 가맹점 273만여 곳 중 대부분인 96%가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됐다. 2012년 1월까지만 해도 68%였던 우대 수수료율 적용 가맹점 비중은 2016년 78%, 지난해 84%까지 오른 데 이어 지난달 96%까지 치솟았다. 이익률이 떨어지게 된 카드사들로선 수수료를 올려 받을 수 있을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대형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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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수수료 인하 방안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대형가맹점으로서는 전반적으로 카드수수료가 내려가는데 왜 우리만 올리느냐 '볼멘소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형가맹점은 카드사와 관계에서 '갑'에 가까워 수수료 협상에서 자신들 입장의 상당 부분을 관철해왔다. 이번 적격비용 재산정 때 카드사 노동조합이 500억원 초과대형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을 법령으로 명문화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대형가맹점 수수료를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소폭 올려받으면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대형가맹점의 반발이 심하면 다음달 1일 인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의 수수료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돼 결국 피해는 소비자만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가맹점들은 카드사들과 무이자 할부나 적립혜택 등의 공동마케팅을 진행해왔는데,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의 갈등이 깊어질 경우 이러한 혜택이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유통사 관계자는 "소상공인 살리기는 결국 경제 살리기의 일환인데, 소상공인을 살리려고 카드 수수료 정책을 무리하게 쓰다가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의 갈등 상황으로 번졌다. 그런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된다면 카드 수수료 정책은 쓰지 않은 것만 못 한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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