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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어디서든 수행…조금만 배려하면 타협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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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해제 하루 앞두고 찾은 ‘천년고찰’ 경북 영천 백흥암

13명의 비구니 스님 3개월 수행

영운 스님 “자기 모습 반추하면 누구라도 자기자리로 돌아와”

‘불교 위기론’에 ‘정진’으로 답

경향신문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경북 영천 백흥암의 심검당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고요함 속에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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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은해사는 이미 봄이 시작된 듯했다. 따스한 햇볕이 차분히 사찰 안을 비췄고 가는 길에 만난 저수지에는 얼음이 흔적도 없이 녹았다.

그러나 은해사에서도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금남(禁男)’의 암자 백흥암은 아직 봄을 맞이하지 않았다. 13명의 비구니 스님이 지난해 11월22일(음력 10월15일)부터 동안거에 들어가 3개월간 치열한 수행을 하고 있는 곳. 동안거 해제(2월19일·음력 1월15일)를 하루 앞둔 18일 기자들이 백흥암을 찾았다.

백흥암은 신라시대 고승 혜철국사가 경문왕 1년(861)에 착공해 873년에 완공했다는 ‘천년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산내암자로 현재는 비구니 스님 수행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1년 내내 개방하는 다른 암자들과 달리 부처님오신날 하루만 문을 연다. 이날 기자들의 방문 행사도 “스님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수행모습을 밖으로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조계종 총무원의 꾸준한 설득 끝에 성사됐다.

백흥암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이유에는 ‘문화재 보호’도 있다. 백흥암은 보물 790호 극락전과 보물 486호 극락전 수미단으로 유명하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는 극락전 건물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넣은 다포양식이다. 안쪽 천장은 가운데가 높고 주변이 낮아 층을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건축수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극락전 안에 봉안된 불단인 수미단은 한국 현존 사찰의 불단 중 장식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이들 보물은 사람의 손을 타면 탈수록 손상될 수밖에 없다.

전국의 수좌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은 1년 중 6개월을 선방에서 꼼짝도 안 하고 보낸다. 바로 ‘안거’다. 겨울철 3개월(음력 10월 보름~이듬해 정월 보름·동안거)과 여름철 3개월(음력 4월 보름~7월 보름·하안거)을 수좌스님들은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각 선원에서 참선수행에 매달린다. 한국 불교계의 안거 수행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전통적인 단체 수행문화라고 한다.

경향신문

영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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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백흥암에서는 선원장 영운 스님이 기자들을 맞이했다. “뭐 하러 이런 곳까지 왔느냐”고 타박을 주면서도 직접 차를 끓여 내줬다. 영운 스님은 1964년 울산 석남사에서 현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9년 비구니계 수지를 받았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석남사 주지를 지냈다. 2004년에는 ‘전국 비구니 선원 선문회’의 초대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을 만큼 신망이 높다.

영운 스님은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석남사에서 출가했고 6년간 주지를 했다. 19살에 출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수행했다. 2013년 이창재 감독이 백흥암에서 수행하는 스님을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에 등장해서는 “밥 한 발우(스님이 쓰는 밥그릇)가 피 한 발우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영운 스님은 “스님은 시은(시주의 은혜)으로 사는데, 그만큼 밥값을 하고 있는지 항상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였다”며 “석남사에는 쌀 한 톨, 간장 한 방울도 아끼지 않으면 시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배웠다”고 말했다.

이렇게 엄격한 스님도 최근에는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안거에 들어가면 밤 11시까지, 하루 13시간 동안 수행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이를 조금 줄였다. 보통 12시간을 하고 아침 공양(식사)을 한 뒤 참선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유시간도 준다. 영운 스님은 “요즘은 사람이 다양해지고, 출가도 늦어졌다”며 “이미 수십년 세월 동안 몸에 익은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예전처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지켜보면 언젠가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영운 스님은 동안거 해제를 맞이하는 스님들에게 “어디 가서도 수행하라”고 당부했다. 절 밖의 사람들에게는 “자비심으로 양보하고 배려하라”고 말했다. 영운 스님은 “조금만 배려하면 타협이 되는데 상대보다 더 잘나야 하고 밟고 올라서려 하면 타협이 안된다”며 “희생정신을 조금만 가져도 아름다운 말이 오가고 싸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제기되고 있는 불교 등 종교의 위기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백흥암 같은 선원과 참선수행하는 스님들이 있어서다. 영운 스님은 “스님이든 불자든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면, 누구라도 자기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며 “불교는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도 큰스님들이 많이 계시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토굴에서 용맹정진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며 “이런 수행의 기운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영천 |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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