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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기고] 표준화 안된 의료정보에 갇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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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과거에 비해 의료정보 교류 범위가 확대 일로에 있다. 의료정보 공유를 위한 인프라(의료정보의 디지털화,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 조회 등)도 확산되면서 표준의 준수 여부를 객관적으로 테스트하고 인증하는 적합성평가의 중요성 또한 대두되고 있다. 적합성평가란 제품, 서비스, 시스템 등이 표준규격을 제대로 준수했는지를 공식적으로 테스트하고, 검증해서 적합 여부를 인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의료정보표준 분야 적합성평가제도 자체가 없다. 2016년 12월에야 의료정보 표준과 시스템 인증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2017년 4월부터 민간 포럼을 통해 표준 적합 여부를 테스트하는 도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인증제도는 있지만, 인증 전 단계에서 필수 사항인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도구와 기관이 없어서 제도 공백이 생기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정기구에서 의료정보표준의 적합 여부를 공식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다고 인정받은 국내 기관은 현재 단 한 곳도 없다.

반면 구글, MS, 애플, 아마존 같은 세계적 기업들은 헬스케어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018년 8월 이들 중 일부는 백악관에 함께 모여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최신 표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들 기업의 목표는 헬스케어 시장을 선점하고 석권하는 것이다. 미래 거대 시장을 미리 목격한 자들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들은 대규모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다. 시장 선점을 위해서다.

이 기업들은 표준화된 의료정보를 단시간에 획득하고, 동시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헬스케어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표준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표준기술의 발전이 바로 적합성평가 체계 구비 수준에 달려 있다. 필자가 적합성평가제도 없이는 표준 강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동안 한국은 의료정보표준 적합성평가 자체를 전적으로 타국에 의존했다. 타국은 민간 협회를 비롯해서 국가 차원에서 적합성평가를 체계적으로 운영 중이다. 미국은 보건의료정보표준 적합성평가를 보건부 산하 '건강정보기술조정국(ONC)'과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두 곳이 역할을 분담해서 진행한다. 유럽은 유로렉(EuroRec)이 의료정보 표준적합성평가를 시행한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은 의료정보표준 분야 적합성평가제도 자체가 없어서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국내 병원시스템 중 국제적 수준의 적합성평가를 통과한 병원은 오직 한 곳이다. 기업이 포함된 이 병원 컨소시엄은 외국에서 인증받은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비즈니스엔 국경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글에서 검색하고, 지메일(gmail)을 쓰며, 아마존에서 책을 사고, MS 오피스 파일을 애플폰에서 열어본다. 이 플랫폼들이 일제히 의료시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마치 새로운 시장 앞에서 긴박한 시간 경쟁을 보는 듯하다. 애플은 폰을 통해 표준에 맞춘 헬스레코드를 서비스하고 애플 워치에 심전도 기능을 추가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는 가정에서 기침 소리로 증상을 감별한다. 클라우드에서 실행되는 구글지노믹스는 유전정보 처리와 공유가 가능하며, 모회사인 알파벳은 데이터 기반 헬스케어 비즈니스를 준비 중이다. 이제 그들이 똘똘 뭉쳐 표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와 같은 시점에 한국은 도처에서 표준화되지 않은 의료정보를 꽁꽁 싸매고 있다. 표준화됐다고 해도 이를 확인하고 확정할 적합성평가제도가 없다. 당연히 국내에서 만들어진 빅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는 낮고, 타당도는 의심될 것이다. 데이터가 21세기 원유인 시대다. 국내 의료 발전, 외국 기업과 건강관리 시장 경쟁 등 의료정보표준의 중요성을 인지한다면 적합성평가 체계 구축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국가적 과제다.

[안선주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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