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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패션의 제왕’ 칼 라거펠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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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칼 라거펠트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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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제왕’ 칼 라거펠트가 별세했다.

19일 영국 BBC 방송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거펠트가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라거필드는 최근 몇 주간 건강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샤넬의 오트 쿠튀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파리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국제양모 사무국 주최의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여성용 코트 부문 1위를 차지한 뒤 이를 계기로 오트 쿠튀르에서 일하게 됐다.

피에르 발망의 보조 디자이너로 시작해 클로에의 책임 디자이너, 발렌티노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을 거쳤다. 1983년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칼 라거펠트는 오뜨쿠튀르 데뷔 무대를 통해 ‘샤넬의 환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샤넬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색을 담은 샤넬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칼 라거펠트를 프레타 포르테를 통해 선보였다.

검정 선글라스에 꽁지머리, 그리고 손가락이 나오는 검정 가죽 장갑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가 13개월간 42㎏을 감량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디올 옴므의 디자이너였던 에디 슬리먼이 만든 옷을 입기 위해서였다. 그의 옷은 가늘고 키 큰 사람만 입을 수 있는데, 슬리먼은 라거펠트의 절친이기도 했다. 감량 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문득, 다른 옷이 입고 싶어졌다.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옷이다.”

칼 라거펠트를 부르는 별칭은 많지만 가장 많이 통용되는 것은 ‘패션의 제왕’이이다. 그가 디자인 책임을 맡은 명품 브랜드가 무려 4개나 되기 때문이다. 그는 1983년 ‘여성들의 꿈’으로 불리는 샤넬의 후계자가 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는 65년 시작해 44년째 의상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하고 있다. 또 다른 명품 클로에는 64년부터 40년간 맡았다가 2005년 스텔라 매카트니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의 이름을 건 ‘라거펠트 갤러리’도 물론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라거펠트는 또 독서광이였다. 프랑스 파리와 브르타뉴, 이탈리아 로마,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모나코 몬테카를로 등 6곳에 대저택을 소유한 그는 소장하고 있는 책만 23만권에 이른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기도 즐겼으며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라거펠트가 일했던 패션브랜드 펜디를 거느린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성명을 내고 “너무나 소중한 친구의 죽음에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파리를 전 세계의 패션 수도로 만들고 펜디를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일군 창의적인 천재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샤넬은 라거펠트가 타계하면서 공석이 된 수석디자이너 자리에 현 비르지니 비아르 부수석을 승진시키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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