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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국책기관 낙관론…잃어버린 20년 일본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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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KDI, 성장률 전망 높게 잡아

국책기관이 한경연보다 오차 커

일본도 20년 내내 1%P 높게 전망

구조적 진단 대신 단기부양 급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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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놓고 ‘스톡데일 패러독스’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영사상가 짐 콜린스가 베트남전 당시 가혹한 현실을 직시해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미군 장교의 이름을 따와 만든 말로, 막연한 낙관적 판단의 위험성을 의미한다.

19일 중앙일보가 2001년 이후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경제연구원의 경제성장률 전망치(직전 연도 4분기 예측치 기준)와 실제 성장률 간 오차를 집계한 결과 한국은행·KDI 같은 국책전망기관들은 저성장기에 접어든 2011년 이후부터 실제 성장률보다 낙관적 전망을 지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이후 실제 성장률에 가장 근접한 전망치를 내놓은 기관은 한국경제연구원, KDI, 한국은행 순이었다. 성장률이 2010년 6.5%로 고점을 찍은 뒤 2~3%대 저성장에 빠진 국면에선 국책기관의 예측 오차가 더 커지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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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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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2.7%에 그친 지난해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한국은행은 2017년 10월 이듬해 경제성장률을 2.9%로 예측한 뒤 지난해 1월에는 3.0%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의 예측치는 2.8%로 실제 성장률에 가장 가까웠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민간 연구기관들은 설비·건설투자 등 시장이 체감하는 지표에 민감하다 보니 성장률 전망을 보수적으로 내놓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망기관이 경기 전망을 수정하는 일이 잦아지면, 이를 기준으로 경영 판단을 내리는 시장 참여자의 불신도 커질 수 있다. 전망기관들은 과거 세월호·메르스 사태 등 예상치 못한 충격 탓에 경기 예측이 빗나갔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성장률 전망 오차가 0.5%포인트 이상 벌어지는 것은 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력 산업 침체로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를 전망기관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낙관적 경기 예측은 단기 부양책 위주의 경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제시한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예비 타당성 검토를 면제하고 토목 사업에 나서거나 공공 부문 일자리를 확대하는 등의 재정 지출을 통한 단기 부양책부터 꺼내 들기 쉽다는 것이다. 주력 산업 경쟁력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살려 나가기 위한 대책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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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낙관적 예측이 위기로 이어진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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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망에 대한 낙관론은 지지율에 민감한 정치권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여권 일각에서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여론에 대해 ‘한국 경제가 당장 망할 것처럼 선동하는 오염된 뉴스’로 단정하는 게 대표적 예다. 정부 기관 합동으로 내놓은 ‘우리 경제 팩트 체크’에서도 “주요국 대비 양호한 성장세와 함께 고용의 질도 개선되고 있다”고 총평했다. 정부가 고용 부진, 경제 활력 저하 문제보다 긍정적인 지표만을 강조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낙관적 경기 전망이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20년’에 들어섰다. 당시 일본 경제기획청은 줄곧 실제 성장률보다 1%포인트 높은 전망치를 제시했다.

하버드대학교 프랑켈 교수가 유로존 24개국을 조사한 결과 2000년대 연간 성장률에 대한 1년 후 오차는 0.3%포인트, 3년 후 오차는 1.9%포인트로 장기 전망일수록 낙관적이었다. 프랑켈 교수는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 등 성장률과 재정 지표를 낙관적으로 예측한 국가일수록 나랏빚(국가부채) 확대로 위기를 겪는 경우가 잦았다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책 전망기관들은 지난해 소득주도 성장 등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성장률 악화는 기업 입장에선 생존의 문제이기 정확한 예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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