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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서양원 칼럼] 청와대 참모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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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전직 고위 경제관료의 한 상가에서 단절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모습을 목격했다. 이 관료는 참여정부 때 차관으로, MB정부 시절에는 장관급을 역임했다. 일을 잘하는 데다 의리 있는 리더라는 평가를 받은 상주였기에 많은 분들이 찾아왔다. 그와 한솥밥을 먹은 관료들은 물론 진보와 보수 측 인사들도 많이 보였다.

전·현직 경제관료들이 죽 앉아 있는데 참여정부 시절 최고위직을 맡았던 인사가 찾아왔다. 하지만 조문만 하고 이내 떠났다. 30여 분 후엔 MB정부 시절 고위간부들이 조문하고 문상객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청와대에서 최근까지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던 인사가 현직 장관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MB정부 때 관료들은 바로 일어나 나가버렸다. 섞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관료는 "세상이 이렇게 격해졌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로 미워도 상갓집에서만큼은 슬픔을 함께 나눴던 미풍양속마저 사라졌다는 얘기다.

요즘 곳곳에서 목격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주말마다 진보와 보수진영의 시위와 충돌이 일어난다. 양측 간 간극이 너무 크다. 이런 반목과 갈등은 자칫 조선을 쇠락하게 한 원인이 됐던 사화(士禍) 수준의 참화로 번질까 걱정이다.

조선의 사화는 권력을 잡으면 상대 진영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 숙청사건이다. 훈구파가 신진 사림세력을 쳐낸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를 폐비시킨 진영을 숙청한 갑자사화(1504년), 훈구세력이 조광조 개혁세력을 몰살시킨 기묘사화(1519년), 인종과 명종의 승계 과정에서 일어난 소윤의 대윤 숙청사건인 을사사화(1545년) 등은 조선의 씁쓸한 분파싸움이다. 이 같은 보복의 역사는 훈구와 사림,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으로 나눠 싸우는 붕당정치를 만들어내면서 계속 되풀이됐다.

지금 우리 정치 상황 또한 이와 비슷한 궤적을 밟을까 우려된다.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후 봉하마을 현장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격앙됐다. 최근까지 적폐청산을 주도했던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당시 장례식장에서 이 전 대통령을 향해 격하게 항의했다. 노건평 씨를 비롯해 강금원, 박연차 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고 이광재 강원지사 등 많은 친노인사들이 감옥에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집권하자 이상득 씨를 비롯해 자원외교를 주도했던 인사들에 대해 죄를 물었다. 같은 한나라당 계열인데도 MB 측근 인사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는 계속 이어졌다.

문재인정부 또한 적폐청산 기치 아래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고, 대기업 총수 등 많은 인사들이 수사 중이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형량대로라면 99세, 96세가 돼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

얼마나 불행한 역사인가. 이런 불행한 역사의 궤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간극을 좁혀 주고, 서로 화해하게 하는 '정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누가 주도해야 하나. 노영민 비서실장을 축으로 한 참모들이 나라의 성공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노 실장이 참모들에게 선물한 책 '참모로 산다는 것'(신병주 지음)은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다. 분열돼 있는 이 시대, 참모들은 사화를 막아내는 큰 틀의 '국민 대화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먼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추진되고 있는 사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라고 권하고 싶다. 문 대통령이 '국민 대화합'이라는 정확한 명분과 목적을 제시한다면 국민은 이를 납득할 것이라고 본다. 이 화합 과정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토론하면서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성숙한 민주주의'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21개월 전 취임연설문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선언해 큰 호응을 얻었다. 사화가 아닌 대화합의 비전으로 국민 의지를 하나로 모은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대북정책에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미·중 패권 싸움의 격랑을 헤쳐 나가는 힘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원 편집이사 겸 세지포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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