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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라스 폰 트리에가 들고 온 또 다른 파격, 또는 불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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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마 잭의 집'

연합뉴스

'살인마 잭의 집'
[엣나인필름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파격은 파격을 낳고, 거장은 자신의 권위에 기댄다.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새 이 오는 21일 개봉한다.

단테의 '신곡', 그중에서도 지옥편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잭(맷 딜런 분)이 그를 지옥으로 이끄는 버지(브루노 간츠)와 동행하며 자신이 12년에 걸쳐 저지른 살인 중 다섯 가지 중요한 살인 사건에 대한 전말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교양 살인마'를 자처하는 잭은 다섯 가지 살인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살인하는 근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는 "옛 성당엔 신만이 볼 수 있는 예술품들이 숨겨져 있고 그 뒤엔 위대한 건축가가 있죠. 살인도 마찬가지입니다"라며 자신의 살인을 예술 행위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비유한다. 직업이 건축가인 그는 정작 실제 예술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집 짓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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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
[엣나인필름 제공]



점점 더 기괴한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잭과 내놓는 영화마다 파격에 파격을 더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묘하게 겹쳐진다. 잭은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예술이라고 믿기 위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동원하고 자신이 가로등 밑에 선 사람이라는 궤변에 가까운 이론을 늘어놓는다.

잭이 예술론을 늘어놓을 때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 파르티타 2번 다단조 작품 826이 흐르고 피카소, 고갱, 클림트 등 여러 작가의 예술작품이 나열된다. 감독은 이 위대한 예술작품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전작인 '멜랑콜리아'(2011), '님포매니악'(2013)을 제시하면서 은근슬쩍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잭이 마치 감독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살인한 뒤 시체를 구도에 맞게 배치하고 사진을 찍거나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총으로 사람을 겨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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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
[엣나인필름 제공]



'살인은 예술'이라고 하는 잭은 관객을 위해 예술의 정의를 내려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다만 아무리 예술이라는 미명을 끌어다 붙여도 살인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이 기괴한 영화의 결말에서도 입증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예술가의 악행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느냐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다.

버지의 입을 통한 잭에 대한 비판은 작품과 작품 외적 이유로 여러 논란에 시달린 감독의 자아비판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결국 잭은 지옥의 문턱에서 시체로 집을 쌓아 올렸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를 내놨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잭의 여성 혐오는 파격을 넘어 불쾌감을 준다. 잭은 "왜 남자가 잘못이라는 거야? 남자로 태어난 게 죄야?"라는 자신의 대사를 대변이라도 하듯 여성들을 희생자로 삼는다. 그는 버지에게 "여성만 죽이지는 않았다. 남성도 죽였다"고 변명하지만, 그가 언급한 다섯 가지 살인은 모두 여성, 또는 다른 약자인 아동을 희생자로 삼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난해 제71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첫선을 보이자마자 100여명의 관객이 퇴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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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
[엣나인필름 제공]



다만 감독이 그리는 지옥의 모습은 일견 신선하다. 구정물이 흐르는 어두운 동굴을 지나고 천국이 보이는 창문이 있는 방을 지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특히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가 재연된 장면에서는 입이 떡 벌어진다.

잭을 연기한 맷 딜런의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다. 그는 완벽하게 강박증을 가진 나르시시스트 살인마로 변신했다. 영화에서 낯익은 배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앞서 유지태가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요소다. 우마 서먼은 잭의 첫 번째 희생자로 등장한다. 버지 역의 배우 브루노 간츠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암 투병 중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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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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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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