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 피델!” - 다시 살아나는 아바나 ①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의 상징인 체 게바라의 네온사인 형상 건너편에 새로 들어선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모습. 밑에 쓰여 있는 ‘Vas Bien. Fidel’이란 문구는 ‘잘하고 있어, 피델’이란 뜻이다. 손호철 교수 제공 |
체 게바라처럼…혁명광장에 검은 네온 시엔푸에고스 새 초상
1959년 아바나 입성 카스트로가 연설 도중에 그와 나눈 대화
“카밀로, 나 어때?” “잘하고 있어, 피델” 혁명의 유행어로 회자
‘동성애 처벌’ 구시대 유물로…성소수자 포용은 우리보다 앞서
가정엔 인터넷 보급 안돼 공공장소 극장 등에서 ‘접속’ 진풍경
나는 혁명루트를 따라 혁명의 시발지인 산티아고데쿠바에서 출발해 시에라 마에스트라 게릴라 본부와 산타클라라, 그리고 히론을 거쳐 아바나로 입성했다. 다른 곳들과 달리 아바나는 18년 전에도 방문했던 곳이다. 그런 만큼 18년 전에 비해 얼마나 변했는가 비교해 보고 싶었다.
“고양이와 쥐를 찾아라.” 2000년 아바나를 방문할 당시 제일 먼저 한 것은 엉뚱하게도 고양이와 쥐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쥐잡기 운동을 벌여 중·고등학교 숙제로 쥐꼬리를 잘라 오게 했지만, 쿠바까지 가서 갑자기 무슨 ‘고양이와 쥐 찾기 운동’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쿠바 여행정보 중 구소련이 몰락하자 식량 부족으로 고양이와 쥐를 다 잡아먹어서 “아바나에 고양이와 쥐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문은 가짜뉴스였고 쥐는 몰라도 고양이는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쿠바 경제가 그만큼 어려웠단 이야기이다. 18년 전의 아바나가 구소련 몰락 후 생존을 위해 허덕이던 도시였다면, 이번에 찾은 아바나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넘쳤다.
카리브해를 따라 해변도로를 달리자 ‘쿠바혁명 60주년’이라 쓰인 현수막이 나타났다. 혁명 60주년 기념일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인지 쿠바여행 중 볼 수 있었던 유일한 혁명 60주년 기념물이었다. 차는 아바나 중심가에 도착했다. 내무성 건물 외벽에 검은 네온으로 만들어놓은 체 게바라의 거대한 초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 덕분에 아바나 최고의 증명사진 장소가 된 혁명광장은 그대로였다.
건너편에 있는 호세 마르티의 거대한 동상과 기념탑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140m의 기념탑과 그 앞에 세워진 동상은 피델 카스트로가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피네섬의 대리석을 가져다 지은 것이다. 기념탑에 들어가면 그에 대한 전시품들을 볼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면 시내를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아바나 최고의 전망대가 펼쳐진다.
쿠바 출신 언론인이자 19세기 스페인어권의 가장 뛰어난 문필가로 평가받는 마르티는 15살에 혁명운동을 하다 체포됐다. 스페인에서 공부를 시키면 스페인에 대한 충성심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한 스페인 정부는 그를 스페인으로 추방한다. 그는 스페인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여러 언론에 쿠바 독립의 필요성을 알리는 글을 썼다. 법대를 졸업하고 1878년 제1차 독립전쟁이 끝난 후 쿠바로 돌아왔으나 변호사 개업을 거절당하자 뉴욕으로 가서 여러 남미 언론의 특파원들과 쿠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쿠바혁명당을 만들고 미국 전역과 중미를 다니며 독립운동을 위한 강의와 모금운동을 펼쳤다. 1895년 제2차 독립전쟁을 위해 쿠바로 향하지만 한 달 뒤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를 기리며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관타나메라를 흥얼거려 봤다.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변한 것이 있었다. 게바라 초상이 있는 내무성 건너편 건물에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 게바라처럼 검은 네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보자,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카스트로나 게바라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쿠바혁명의 일등공신이며 쿠바 내에서는 아주 존경받는 혁명가이다. 그는 카스트로의 멕시코 망명 시절부터 혁명에 참여했고, 게바라와 함께 1958년 12월31일 산타클라라를 점령해 제일 먼저 혁명군을 이끌고 아바나에 입성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혁명 성공 후 카스트로가 동생 라울이나 게바라가 아니라 시엔푸에고스를 군의 총수로 임명했다는 것은 그를 얼마나 신뢰했나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혁명 승리 아홉 달 뒤 경비행기 사고로 실종됐다. 카스트로는 그를 기리기 위해 20페소 지폐에 그의 얼굴을 넣는 등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2009년 10월 그의 죽음 50주년을 기념해 카스트로의 얼굴이 설치되어 있는 내무성 건너편의 정보통신성 벽에 크게 그의 얼굴을 설치한 것이다. 그 밑에 필기체로 무엇인가 쓰여 있어 자세히 보니 ‘Vas bien, Fidel’이었다. 1959년 1월8일 개선장군으로 아바나에 입성한 카스트로는 혁명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중 연설을 중단하고 옆에 있던 시엔푸에고스에게 물었다. “카밀로, 나 어때?” 이에 시엔푸에고스는 “Vas bien, 피델”이라고 답했다. “잘하고 있어, 피델”이란 뜻이다. 청중들은 열광했고 ‘Vas bien, 피델’은 혁명의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혁명박물관에 가 보니 이 역시 진일보했다. 18년 전과 달리 화사하게 새 단장을 했고 전시물들도 훨씬 많아졌다. 정글 속에서 게릴라전을 하는 카스트로와 게바라를 실물처럼 복제해놓은 것과 GE 등 1961년 국유화한 미국 기업들의 마크 등은 그대로였다. 바티스타 시절의 암울한 현실부터 혁명 과정을 시기순으로 잘 정리해놓은 사진 전시물들은 많이 보강됐다. 특히 3층에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멕시코에서 타고 온 요트 ‘그란마’를 형형색색으로 만들어놓아 관람객들이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지난번 왔을 때 보지 못했던 그란마 전시관도 볼 수 있었다. 혁명박물관 뒤쪽에 별관으로 설치된 그란마 전시관에는 유리벽 속에 1956년 카스트로가 게릴라전을 위해 멕시코에서 쿠바까지 타고 온 실물 그란마가 전시되어 있다. 이 작은 배에 80명이나 타고 카리브해를 건너왔다니 믿기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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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바나 중심가에는 의회 건물 앞 광장이 있다. 18년 전 신기한 볼거리 정도였던 1950년대의 낡은 미국 자동차들은 이제 깨끗하게 수리해 번쩍번쩍하게 윤을 낸 후 일렬로 주차되어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시간당 30~50달러를 받고 차를 빌려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올드카 가격이 올라 이제는 최근에 출고된 새 차와 비슷하다고 한다. 중심가 골목을 걸으며 보니 건물들의 외관은 그대로지만 페인트칠을 새로 해 단장을 했고 상점들도 화려하게 변모했다. 유아용품 전문점, 전자용품 전문점도 눈에 띄었다. 그만큼 생활수준이 높아진 ‘중산층’이 늘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는 생필품 가게의 물건들은 여전히 조야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를 사기 위한 긴 줄도 여전했다. 그만큼 쿠바 사회도 양극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골목에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골목 중간쯤 있는 큰 서점. 18년 전 쿠바를 방문했을 때 경제적으로 놀랐던 것이 달러가 통용된다는 사실과 미국 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면, 정치적으로는 카스트로의 동상이 하나도 없는 등 개인숭배가 없다는 것과 정치적 자유가 크다는 점이었다. 당시 큰 서점에서 애덤 스미스의 책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의 교주인 애덤 스미스라니?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번에 책방에 들어가 보니 책들이 그때보다 더 다양해졌다. 서점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입구의 유리창에는 서점에서 취급하는 유명 저자들의 이름을 써놓았는데 그중에는 미시마 유키오도 있었다. 그는 도쿄대 법대를 나온 유명한 심미주의 작가로 45세였던 1970년에 무력한 자위대의 각성을 촉구하며 할복자살한 극우파이다.
18년 전보다 훨씬 자유가 확대된 것은 서적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바나 근교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것도 아바나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쿠바 곳곳을 다녔지만 어디에서도 검문을 받지 않았다. 이 점에서 쿠바는 외국인 관광객의 동선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북한과는 전혀 다르고, 시장경제와 개방정책을 추구하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비슷하다. 내국인의 경우도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이 없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돈만 있으면 해외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한다.
한때는 유명 야구선수들의 해외여행을 제한하기도 했다. 외국에 나갔다가 그대로 도주해 거액을 주는 미국 프로야구단에 취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야구선수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쿠바 정부와 메이저리그는 쿠바 선수들의 합법적인 스카우트에 합의했다. 1980년 쿠바의 반정부 세력 등을 중심으로 쿠바를 탈출하려는 ‘쿠바판 보트피플’이 생겨나자 카스트로는 “쿠바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떠나라”며 국경해안 개방을 선언해 12만5000명의 망명을 허용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 LA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 선수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몇 차례나 망망대해를 건너 미국으로 넘어왔다 실패했는데, 그의 망명이 실패했던 것은 쿠바 정부 때문이 아니라 미국 해안경비대가 그를 잡아서 쿠바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와 같은 언론·집회의 자유는 없다. 그리고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미국 등에서는 계속 쿠바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서점에 가면 보수적인 책도 팔고 있고 CNN 등 서양 방송도 TV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치고는 자본주의 진영의 자유민주주의가 중요시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나라이다. 종교의 자유도 상당히 허용해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4세, 프란치스코 교황 등 교황이 세 차례나 직접 방문한 바 있다.
마탄사스에서 들른 개인음식점은 외벽에다가 ‘종교, 문화, 희망’이라고 크게 써놓았다. 쿠바혁명 정부는 그동안 동성애를 자본주의의 퇴폐문화로 규정해 처벌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관대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해, 처벌이 사라졌다. 1960년생인 ‘포스트 혁명세대’로 로큰롤을 좋아하고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등 개방적 성격의 미겔 디아스카넬은 2018년 6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자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 개정안을 곧 국민투표에 부쳤다. 성소수자에 관한 한, 동성애 결혼 허용은커녕 동성애 차별금지 명문화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보다도 오히려 쿠바가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쿠바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북한이다. 북한의 ‘억압성’이 ‘미국 제국주의’ 등 외부의 위협 탓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같은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코앞에 있는 쿠바의 경우 미국의 위협이 북한보다 몇 백배 강할 것이다. 소련의 보호막이 사라진 1990년대 이후는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북한의 세습과 독재가 외부의 위협 탓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쿠바는 북한보다 백배는 더 강하게 카스트로를 개인숭배해야 했을 것이고 자유도 훨씬 더 억압했어야 한다. 그러나 쿠바에는 북한 같은 개인숭배가 없고 ‘사회주의 국가’치고는 상대적으로 자유권 역시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 있다. 이는 북한의 변명이나 북한을 위한 변명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점들이 즐비한 큰 골목을 빠져나와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낡고 가난한 민중들의 생활공간이 나타났다, 냉장고 보급이 보편적이지 않은 만큼 그날 잡은 싱싱한 고기들을 그냥 걸어놓고 팔고 있는 정육점을 비롯해 살가운 공동체들이 나타났다.
재미있는 것은 낡은 수선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는 가게에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원시적인 휴대폰 수리소였다. 저런 원시적인 장소에서 21세기의 최첨단 기계인 휴대폰을 고치다니 믿기지가 않는 장면이었다.
인터넷 열풍은 쿠바라고 다르지 않았다. 밤늦게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창밖을 보니 불 꺼진 극장 앞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뭐 하는 것이냐”고 가이드에게 묻자 “극장은 인터넷이 되기 때문에 인터넷을 하기 위해 모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쿠바에서는 가정에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인터넷을 하려면 공공장소를 가야 한다. 호텔에서도 인터넷을 하려면 1시간당 1쿡(1.2달러) 하는 카드를 사서 인터넷이 되는 로비에 가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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