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제2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2.20. mangusta@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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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스위스에서 치를 입단 오디션을 이틀 앞둔 작년 9월18일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25)은 부산문화회관에 있었다. 오충근이 지휘하는 부산심포니 공연에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이후 곧장 취리히로 날아갔다.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숙소에서 3시간 쪽잠을 잔 뒤 몽롱한 상태로 오전 9시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오케스트라의 파트를 발췌해 악기별로 연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을 가리키는 엑서프츠(excerpts)를 익히느라 비행기에서 한 숨도 자지 못했다.
후드티,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의 김재원이 오디션장 문을 열자 그녀가 어릴 적 참여한 마스터클래스를 주최한 곳에서 연 유명 콩쿠르의 입상자도 눈에 띄었다. 엄격한 서류 전형을 거쳐 1차 오디션에 도전한 이는 30명가량. 2차에 김재원을 포함, 3명이 올라갔다. 마지막 3차에서는 그녀만 남았다. 단원 5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김재원은 스위스 명문 악단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제2악장이 됐다. 이 오케스트라 사상 최초 한국인 제2악장이다. 3년 동안 세 차례 오디션에서 한 명도 뽑지 않은 이 악단이 적임자로 김재원을 택했다.
1868년 설립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제네바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양대 악단으로 꼽힌다. 2014~2015시즌부터 리오넬 브랑기에가 상임 지휘자로 재직 중이다. 2019~2020시즌부터는 에스토니아의 파보 예르비가 상임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이끈다. 김재원은 예르비 임기가 시작하는 8월부터 제2악장으로 활동한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김재원은 "제가 동양인이고 여자이고 아직 학생인 것도 알아서 악단 쪽에서 선입견 없이 듣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콧대가 높은 독일인이 대부분인데, 벽 없이 인정을 해줘서 고마웠어요"라고 말했다. "정말 큰 박수도 보내주셨죠. 어마어마한 따듯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김재원은 역시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입은 채 웃고 있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김재원이 도전한 두 번째 악단 입단 오디션이다. 첫 오디션 자리는 세계적인 악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부악장. 이 악단의 부악장이던 아야코 다나카가 프랑스 릴 국립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옮기면서, 자리가 났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제2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2.20. mangusta@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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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재원의 나이는 만 23세. 오디션을 뒤늦게 알게 돼 하루 전날 접수를 했고, 첫 직장을 구하는 만큼 조바심도 났다는 그녀는 그럼에도 오디션에 지원한 55명을 제치고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결국 1차 오디션을 면제 받은 악단의 다른 연주자에게 부악장 자리가 돌아갔지만 김재원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2악장 자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악장으로서 30회 이상 공연을 이끌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 악단의 악장 3명은 이미 김재원을 크게 흡족해했다. 한명은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축하한다며 장문의 e-메일을 보냈다.
다른 악장은 김재원이 독일어를 공부하러 찾은 베를린에 도이치 오퍼 공연을 위해 왔다가 그녀와 만나 인사하며 역시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또 다른 악장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이디 사하치인데 한국 피아니스트 허승연의 실내악 멤버로 지난해 내한 당시 김재원을 만났다.
이처럼 타고난 연주자는 사람의 마음까지 끌고 다닌다. 김재원이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손색 없는 이유다. 18~28세 음악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한 이 오케스트라를 '유스'라고 무시했다고는 큰코 다친다.
롯데문화재단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작년 1월 지휘자 정명훈 전 예술감독과 함께 창단했는데, 김재원의 취리히 톤할레에 입단에 이 악단의 악장이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오케스트라 전문 연주자 양성이 목표이며 빈 필하모닉,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등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수석 연주자들이 지도한다. 김재원 외에 오보에 단원 이인영이 코리안심포니 부수석으로 입단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제2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2.20. mangusta@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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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이 정명훈을 처음 만난 때는 2015년, 그가 지휘한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콘서트에 객원으로 참여하면서다. 당시 정명훈의 주특기 중 하나인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다.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아카데미에서 뒷줄에 앉아 정명훈을 멀리서 지켜보며 듣고 배우던 그녀는 지금 그의 바로 옆에서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는 연주자가 됐다.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를 통해 정명훈 선생님께 배우면서 모든 것이 새로웠어요. 지금은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어떻게 하실지 감을 잡죠. 확실한 소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즐거워요."
부산 출신인 김재원은 부산예중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입학한 뒤 김남윤 등을 사사하고 졸업했다. 서울시향 악장을 지낸 현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의 권유로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김재원은 솔리스트로만 부각되기를 희망한 기존 클래식계 분위기와 달리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또 다른 연주자의 길을 개척하는 젊은 연주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 흐름의 대표적 보기다.
"제 유럽 친구들이 유명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연주를 잘하는 솔리스트들이에요. 그런데 실내악 그룹을 무조건 병행해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도 많이 하고요. 솔리스트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회에 열린 마음으로 임하면, 오케스트라에 몸 담거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어마어마한 선생님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거든요. 그 친구들 영향도 받았어요. 오케스트라는 연주자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제2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2.20. mangusta@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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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은 지난해 말 부산에서 부산시향과 협연을 했는데 이 악단을 이끄는 최수열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은 그녀에게 "오케스트라를 잘 아는 연주자"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부산대 교수를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희의 딸이기도 한 김재원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당연하게도 연주자가 됐다. 이 길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바이올린이 여전히 좋다. "매일 매일 조금 덜 게으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이 쌓여서 내일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지금 이대로 잘해나가면, 좋은 일들이 더 많아질 거라 믿어요."
한편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는 23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세 번째 정기 연주회를 연다. 브람스 교향곡 2번과 피아니스트 임주희의 협연으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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