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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마음에서 입술로 간 빛, 박미란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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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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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빨간 바께쓰를 들고 나온 총각과 멋쩍게 헤어졌다/ 안녕, 너의 모든 것이 궁금해// 한때 잘 자라던 양지 식물이/ 말라비틀어지며/ 무거운 정오를 제 몸속에 구겨 넣었다// 모든 걸 잴 수는 없다/ 목구멍에서 위장까지, 안방에서 거실까지의 길이를 지우려면// 걷지 않으면 된다/ 인사하지 않으면 된다.'('안녕' 중)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미란의 시집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가 나왔다. 시 56편이 담겼다.

'당신을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후회한다는 걸 알아요 어떤 말은 비참해서 입술에서 나가는 순간 얼음이 되어요 어느 때부턴가 차가움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소음이 심한 냉장고의 커다란 얼음덩어리에 힘들었던 적 있어요 어떻게 그걸 안고 살아왔는지 몸속의 종양 덩어리를 뱉어놓은 듯 냉장고는 멈추었어요 이제 당신을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차가운 당신, 당신이라는 환상을, 견디기 싫어졌어요 마음의 얼음덩어리를 들어내면 또 후회하겠지만 녹는 순간을 지켜보던 마지막 천사처럼 우리의 느닷없는 밤도 흘러갔어요.'('저녁에서 밤으로 흘러들었다' 중)

'옛날에 우리는/ 때때로 할 말을 잃고// 까마득히 깊어져서/ 더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가슴에/ 시퍼런 멍으로 빛나며// 여기까지 흘러왔으니// 잘 가라,/ 아주 잘 가거라.'('북극성' 중)

시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줄기 빛이 마음에서 입술로/ 건너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뒤를 돌아보면/ 너는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참, 시시하기도 하지/ 이 모든 뒤척임." 121쪽, 9000원, 문학과지성사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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