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요즘 일본 정치권은 아동학대방지법 개정안에 체벌금지 포함 여부로 한창 시끄럽다. 올해 초 10세 여아가 아버지의 상습폭행으로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또 발생한 데다, 피해 아동이 학교 등에 학대 사실을 알리는 등 수차례 도움을 청했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연이어 확인돼서다.
최근에는 숨진 아동의 부모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스마트폰 학대 영상까지 나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피해 아동이 아버지에게 얻어맞아 울먹이면서도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경찰의 설명에 여론은 발칵 뒤집어졌다. '잔혹소설이나 마찬가지다'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비판과 함께, 일본 특유의 엄격한 훈육을 가리키는 이른바 '시쓰케(仕付)' 문화가 자녀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는 학대로 이어졌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쏟아진다.
일본에서는 학교 내 처벌이 학교교육법에 의해 전면 금지된 반면, 가정 내 처벌은 명문화돼있지 않다. 오히려 친권의 징계권이 민법상에 보장돼있다.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가 이달 초 일본의 아동학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보호자의 자녀 체벌을 용인하는 징계권을 재검토하라고 직접적으로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아동학대 의심사례는 지난해 8만명을 넘어섰다. 결국 유엔까지 나서며 아동학대 파문이 확산되자 자민당을 비롯한 초당파 의원 연맹은 지난 19일 법무상과 만나 민법에서 징계권을 삭제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학대행위자의 80% 상당이 부모, 그 가운데 76% 상당이 친부와 친모로 파악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민법상 징계권이 '사랑의 매'와 '학대' 사이의 모호한 경계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민법 915조에 징계권이 규정돼있다. '징계권=체벌'이 아님에도 학대와 훈육의 애매한 경계가 일상생활은 물론, 법원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결국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에 따른 문제다.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은 맞으면서 큰다" "나도 어렸을 때 이렇게 맞고 자랐다. 이게 무슨 학대냐"는 말은 이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마련됐지만 갈 길은 멀다. 이제 매질은 물론, 위협적인 비난과 질책까지 아동학대임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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