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베 정상회담이 맺어준 '북한 다문화 1호' 리영희씨 부부
북한-베트남 정상회담이 맺어준 '31년 러브 스토리' |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기다리는 북한 국적의 리영희(71) 씨와 베트남 국적의 남편 팜 응옥 까인(70) 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리 씨 부부는 북한이 2002년 베트남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처음 외국인과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로 현재 하노이에 살고 있다.
21일 한 식당에서 만난 리 씨는 "이번에 조미(북미) 정상회담이 잘 돼서 조선(북한)이 지금과 다른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까인 씨는 "김정은 위원장(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미국과 외교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보게 되면 미국과의 회담이 잘될 것"이라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31년 러브 스토리' 주인공인 두 사람의 만남은 까인 씨가 1971년 북한 함흥화학공대에서 유학하면서 리 씨가 일하는 비료공장에 실습하러 가면서 이뤄졌다.
리 씨의 첫인상에 반한 까인 씨는 6개월 만에 사랑에 빠졌고,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졌던 리 씨도 까인 씨의 헌신적인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양국 모두 국제결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까인 씨는 1973년 쓸쓸히 귀국해야 했다.
두 사람은 이후 연애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1992년 이마저도 끊겼다.
북한 당국이 외국인으로부터 편지가 오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리 씨가 주소를 옮긴 뒤 연락을 끊은 탓이다.
애간장을 태우던 까인 씨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이뤄지던 1997년 쌀 7t을 북한에 '선물'로 보내며 구애 작전을 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31년간의 기다림은 2002년 5월 쩐 득 르엉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 정상회담을 하면서 결실을 보게 된다.
54세에도 결혼하지 않고 리 씨와의 재회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까인 씨는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듣고 베트남의 공산 혁명가이자 외교부 차관급으로 재직 중인 부친에게 리 씨와의 결혼을 성사시켜 달라고 읍소했다.
덕분에 북베 정상회담의 정식 의제 마지막 항목으로 이 문제가 포함됐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2002년 9월 리 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까인 씨와의 결혼과 베트남행이 결정됐다는 말을 들었다.
리 씨는 "꿈만 같았다"면서 "과연 실현될까 의문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 달 뒤인 2002년 10월 말 꿈은 현실이 됐다. 리 씨는 북한 국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국제결혼을 승인받아 1개월 전부터 평양에 와 있던 까인 씨와 함께 베트남행 비행기를 탔다.
까인 씨는 '31년을 버틴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내의 마음이 좋았다"고 말했다.
리 씨는 같은 질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리 씨 부부는 '결혼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의 마음은 어떠냐'는 질문에 말없이 손을 맞잡으며 깍지를 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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