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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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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여상미] "이게 뭐예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묻고 또 묻던 시간들이 지나가자 아이는 이제 스스로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고, 이전에 들은 적 없던 말들도 속사포처럼 내뱉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을 하거나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엉뚱한 말을 해서 오히려 나를 당황시킨 적도 많다. 정말이지 대략 만 나이 3세를 전후해 아이의 언어 발달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시기를 이대로 넘기면 안 되겠다 싶어서 책장 앞으로 아이를 더욱 유도하기도 하고 틈만 나면 낱말카드를 가지고 퀴즈놀이를 하자고 쫓아다니지만, 종전까지만 해도 곧잘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외곤 했던 아이의 관심은 도통 돌아오질 않는다. 언어의 발달과 함께 무시무시한 자아도 성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또래 여느 남아들이 그렇듯 자동차, 공룡, 블록 등에 관심이 생긴 아이는 더 이상 엄마 곁을 종일 맴돌지 않는다. 물론 (엄마가 아닌 누구라도) 자신이 설정한 역할극의 상대로서 필요로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오로지 엄마가 해야 하는 역할, 즉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거나 본능적인 것들을 충족시켜 주는 일상과는 또 다른 상황들을 마주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내가 키우고 있다는 착각, 하지만 아이는 이미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여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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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종종 경찰 놀이에서 잡혀야 하는 나쁜 악당이 되거나, 병원놀이의 환자, 어미 공룡 같은 것들이 돼야 했고 아이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돌발 상황극에 대처하기 위해 늘 긴장해야 했다. 좀 더 다양한 언어로,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을 이끌어 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의 첫 역할극은 자신이 엄마가 돼 아이(장난감) 잘못을 야단치는 상황! 평소 내가 쓰던 말투며 목소리 톤까지 붙여넣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건 친구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지 지난날들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제와 무턱대고 부모가 아이의 놀이까지 개입하고 관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놀이 또한 '본인도 모르게 마음에 담고 있던 정서 혹은 스트레스의 표출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해서 아이가 혼자 역할을 정하고 말이 많아질 때는 가능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거나 개입하지 않고 최대한 지켜보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 우연히 참석하게 된, 유아 교육에 관한 어느 세미나에서 강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요즘 엄마들은 과거보다 자녀도 덜 낳고 육아 환경도 좋아졌지만 예전보다 아이 키우는 것을 더욱 힘들어한다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엄마가 엄마의 역할 말고 다른 역할까지 너무 많이 하려고 해서’ 란다. 많은 엄마들이 너무나 공감 했던 그 말에 나 역시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육아를 하며 유독 힘들었던 상황을 돌이켜 보면 정작 아이보다 내가 자초해 벌인 일들이 더 많았으니까.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선생님, 요리사 혹은 그보다 더한 무엇이 되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아이의 역할 놀이는 이제 부모와 자녀의 훈육 상황극을 벗어나 친구와 놀이하는 상황 등 다양한 일상으로 바뀌어 간다. 하지만 "같이 놀자", "내가 도와줄게"하다가도 "내 것이야", "저리 가" 하며 저 혼자 토라져 끝나기 일쑤.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의 놀이 안에 부정과 긍정의 언어는 언제나 함께 존재했다. 가끔 한 쪽으로 치우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해도 지나고 보면 부모의 지나친 기우와 관심이 때로는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때가 있더라.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는지 부쩍 자란 아이의 모습이 괜스레 서운해 지던 날, 아이가 "엄마 슬퍼? 속상해?" 하고 물었다. 그럴 리가!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이 예전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종종 그런 마음으로 울컥한다. 엄마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내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는 어느새 스스로 자라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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