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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유전체업계, DTC 시범사업 전면 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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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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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분석업체들이 소비자 직접 의뢰(DTC) 검사 대상 확대를 위한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 참여를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DTC는 병원을 거치지 않고 유전체 분석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의뢰를 받아 유전체(유전자+염색체) 검사를 해주는 것으로 복지부는 지난 14일 DTC 검사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57개로 늘리기 위한 시범사업을 연말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 일주일 만에 업계가 시범사업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9개 업체를 회원사로 둔 유전체기업협의회(유기협)는 지난 20일 회의를 열고 복지부의 DTC 검사 항목 확대를 위한 인증제 시범사업에 모든 회원이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복지부는 인증제 시범사업을 통해 업체들에 오는 5∼9월 DTC 시범 운용을 맡긴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예비 인증을 부여하고, 향후 고시 개정 등을 통해 확대할 유전체 분석 대상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대상 항목이 57개로 업계가 요구했던 121개에 비해 크게 축소됐고,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업계가 배제됐다"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기협은 "산업계가 안 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풀어주는 네거티브 규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당초 121개 항목으로 논의됐지만 57개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질병과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는 유전자 검사는 제외되는 등 산업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참 사유를 밝혔다. 121개 항목에는 간기능, 갑상선, 골밀도 개선지표 등이 들어 있지만 57개로 줄어들면서 이처럼 질병과 관련된 항목은 모두 제외됐다.

업계는 항목을 57개로 제한한 것 자체가 정부의 DTC 규제 철회 의지가 없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업계는 질병까지 DTC에 넣자고 요구했지만 정부 측 설득에 웰니스(건강 증진)부터 하는 데 동의했다"며 "업계가 양보했는데도, 당장 시행도 아닌 시범사업으로 하는 것도 모자라 대상을 57개로 한정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57개 항목을 선정한 기준과 근거에 대해서도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B사 관계자는 "2016년 선정 때는 '비타민C 농도'가 포함됐고, 이번에는 '비타민D 농도'가 추가됐다"며 "비타민C와 D는 되는데 다른 비타민은 안 되고,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은 왜 빠졌는지 설명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소비자 건강과 관련된 만큼 시범사업을 거쳐 철저한 검증을 통해 대상을 정해야 한다"며 "추가적인 항목 확대는 상설로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업계 의견을 받아 신중한 검토를 거친 뒤 고시 개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복지부는 "질병 관련 국내 유전자 연구 성과가 외국에 비해 부족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검사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며 "질병 쪽은 도입 근거부터 충분히 쌓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시범사업으로 연내 항목 확대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점도 불만이다. C사 관계자는 "당초 올 상반기에 시범사업을 끝내고 하반기에는 고시를 바꿔 추가 사업이 허용될 것으로 기대했다"며 "하지만 시범사업 절차가 연말까지 진행되면 DTC 확대가 현실화하더라도 그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혈압 등 12개 항목에 대한 DTC를 도입한 뒤 정부가 시행 2년 후 조사 대상 확대를 약속했으면서도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는데 또다시 시범사업을 핑계로 사업 확대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주장이다. 시범사업 자체가 시간끌기용 꼼수이고 시범사업 후에도 조사 대상 확대가 이뤄질지 불확실하다며 업계는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시범사업을 진행할 추진위원회 구성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추진위원회는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됐는데 DTC 확대에 반대해온 의료계가 주도하고 있어 업계 입장을 대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B사 대표는 "추진위원 13명 중 의료계 대표 3명을 포함해 정부 대표 1명, 업계 대표 2명 중 1명이 의사 출신이라 의사가 5명이고 산업계 대표는 실질적으로 1명뿐"이라며 "DTC 확대를 위한 공정한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업계 대표로 포함된 G사 대표는 지난해 6월까지 진단의학과 교수를 지냈다. 다른 관계자는 "G사는 DTC보다는 의료기관과 연계한 유전자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DTC 확대 목소리를 제대로 낼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보조 없이 참여 업체에 비용을 전액 부담시킨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시범사업이 연구 목적인 만큼 고객들로부터 추가 검사 항목에 대해 비용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D사 관계자는 "현행 12개 항목 검사비용이 15만원 전후인데 여기에 몇 개 항목을 추가하면 비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김병호 기자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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