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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평양이 中지역이라고…논문검증시스템 부실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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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저자들이 `고려 평양성의 위상도`라고 밝힌 지도. 조선시대 그려진 지도로 고려대 소장.


잘못된 가설에 기반한 역사 관련 논문이 교육과 수학 분야 학술지에 게재되면서 부실한 논문 검증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17년 12월, 인하대 수학과 A교수와 군산대 수학과 B교수가 교육 관련 학술지에 위상수학(위치·공간을 다루는 학문)을 활용해 고려시대 평양을 분석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고려시대 때 제작된 지도를 발견했는데 위상수학을 이용해 확인한 결과 고려시대 평양이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요양시 지역이라는 내용이었다. 고려가 중국 영토까지 다스렸던 '대국'이었음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주류 학계는 가설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기경량 가톨릭대 인문학부 교수는 "저자들이 발견했다는 고지도는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평양지도" 라며 "조선시대에 작성됐는데 마치 고려시대 지도인 것처럼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에 제작된 지도가 발견된 적은 없다.

하지만 A교수는 "고지도가 언제 그려졌는지 중요하지 않다"며 "조선시대 지도는 과거 지도를 베낀 것도 있다"고 반박했다. 조선사 전공자인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저자들은 "고지도에 있는 대동강 섬 개수와 현재 대동강 섬 개수가 다른 만큼 지도 속 평양은 북한 평양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침식·퇴적으로 섬 위치나 개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에 저자들은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현재 평양지역 위성사진과 70여 년 전 해방 직후 미군이 작성한 평양 지도를 비교해 보면 섬 개수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기 교수는 지난해에 이들의 논문 자료 출처가 위·변조 됐다고 판단하고 연구윤리 위반으로 연구재단에 신고했다. 각 대학은 연구재단 요청에 연구윤리위원회를 개최해 논문을 조사했다. 인하대는 "자료 오류나 착오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연구윤리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군산대는 "연구 부정행위로 보기 어렵지만 논문을 철회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의제기에 지난해 말 "논문의 불성실·자료 오류는 학계의 자유로운 학문적 평가를 통해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놨다.

저자들은 지난해 8월, 문제가 된 논문을 근거로 한 또 다른 논문을 영남수학회가 발간하는 수학 학술지에 투고했고 열흘 만에 게재가 승인됐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고지도에 나타난 평양 인근 강의 지류를 비교해 고려시대 평양이 중국에 위치한다는 주장을 다시 펼쳤다. A교수는 "첫 번째 논문은 서경전도, 두 번째는 평양 전체를 본 만큼 표절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B교수는 "일제시대 때 일본이 우리나라 고지도를 많이 수정했고 중국 내에 평양이 있다는 역사서도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지도를 전공한 국내 한 박사는 "조선시대 지도의 평양이 현재 북한 평양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 잘못된 역사학을 증명한다는 목적으로 수학·천문학이 사용되는 사례가 있다"며 이는 현대과학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기경량 교수는 "허술한 논문이 동료평가를 쉽게 통과한 뒤 마치 '진실'인 것처럼 호도되는 학계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연구재단과 대학 모두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하대와 군산대는 이번 사안에 대해 재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원호섭 기자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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