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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푸틴 `이에는 이`…"美겨냥 중거리 핵무기 배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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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연례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러시아도 미국을 겨냥한 중거리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를 선언한 이후 양국 간 핵무기 경쟁이 갈수록 확대될 것임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푸틴 대통령은 경제 문제와 관련해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천명했다. 또 그는 복지를 확충해 최근 급락하는 지지율을 회복하는 데 나서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고스티니 드보르' 콘퍼런스홀에서 진행된 연례 상·하원 합동 대(對)의회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INF 파기를 선언한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계획대로 미사일이 생산돼 유럽에 배치되면 이는 국제 안보 정세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라며 "일부 미사일은 모스크바까지 날아오는 시간이 10~12분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에게 아주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INF는 1987년 미국과 옛 소련(현 러시아)이 사거리 500~5000㎞의 중거리 핵 미사일의 생산·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조약으로, 미·소 간 군비 경쟁을 종식하는 토대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러시아가 이 조약을 먼저 어겼다는 이유로 이를 탈퇴하겠다고 주장했고, 지난 1일 공식 탈퇴를 선언했다. 러시아는 INF가 없어진 후 미국이 유럽 내 동맹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 자국이 사정권에 드는 것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칭적이고 대등한 행동을 검토해야 한다"며 "러시아는 직접적 위협이 출발하는 지역뿐 아니라 미사일 시스템 사용을 결정하는 곳을 향해서도 무기를 전개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본토의 군사 지휘본부도 러시아의 맞대응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푸틴 대통령 발언은 INF 위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러시아의 '선전'"이라고 일축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관계자는 이날 러시아 타스통신에 "나토 국가들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러시아의 발언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반발하며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할 것을 여러 차례 촉구해 왔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개발하고 있는 신형 무기도 소개했다. 그는 원자력 수중 드론 '포세이돈'으로 무장된 핵잠수함이 올봄에 진수될 것이며, 신형 순항미사일 '아반가르트'로 무장한 미사일부대가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극초음속 미사일 '치르콘' 역시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군비축소조약 파기에 대한 발언 이후 자국 첨단 무기를 자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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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엔진을 장착한 러시아의 수중 드론 '포세이돈' 모습.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포세이 돈을 장착한 핵 잠수함이 올봄에 진수될 것이라고 밝혔다. [A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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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1시간27분 동안 진행된 이날 연설에서 3분의 2가량을 사회복지 확충과 경기 활성화 방안에 대해 할애했다. 그는 "지금은 산업 성장에 대한 촉진이 필요할 때"라며 "기업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고 기업 환경 조성을 통한 경제 성장을 강조했다. 또 첨단기술 창업에 대한 투자 여건 조성도 주문했다. 아울러 "정직한 기업은 기소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소는 절차적으로 정당성을 지켜 사업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외신들은 이 발언이 최근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자가 러시아에서 체포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주 러시아 수사당국은 사모펀드 베어링 보스토크의 마이클 캘비 대표를 자회사인 보스토테크 은행에서 3800만달러를 빼돌린 혐의로 구속했다.

사회복지 정책도 쏟아졌다. 그는 "러시아인 1억4400만명 중 빈곤층이 1900만명이라는 것은 너무 높은 수치"라며 연금액을 최저 생계 수준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또 2020년까지 의료기관 1900곳을 새로 짓거나 현대화하고, 향후 6년 동안 암퇴치 연구에 1조루블(약 17조원)을 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저출산 대책도 나왔다. 그는 두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고, 올해 보육시설 9만곳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최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시작돼 2050년에는 러시아 인구가 현재보다 2000만명 적은 1억2000만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세금이 줄어드는 길"이라고 저출산 극복을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곤두박질치고 있는 지지율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5월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은 이후 은퇴·연금 수령 연령 개혁 등 논란이 많은 정책과 경제 악화 등으로 국민 지지를 잃고 있다.

지난 1월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푸틴에 대한 직무만족도는 64%를 기록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지금 대선이 치러지면 푸틴을 뽑겠느냐'는 질문에 40%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날 러시아 국가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러시아 국민의 실질가처분소득은 전년 대비 0.2% 하락해, 2014년 이래 4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였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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