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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수명 늘고 경제규모 커져"…대법, 시대변화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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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노동 정년 65세로 ◆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육체노동 가동연한(최대로 일할 수 있는 나이)을 65세로 상향하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생활 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했고 법제도가 개선되면서 국민 평균여명과 법정 정년 등 제반 사정이 변했다"고 밝혔다.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한은 60세가 될 때까지로 하는 게 경험칙이라는 1989년 대법원 전합 판결은 새로운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바꾸는 게 맞는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국민 평균수명이 1989년 남자 67세, 여자 75.3세에서 2015년 남자 79세, 여자 85.2세로, 2017년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늘어난 점을 예로 들었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6516달러에서 2만7000달러로 늘어나는 등 경제 규모가 4배 이상 커진 점도 언급했다. 또한 법정 정년이 만 60세나 만 60세 이상으로 연장된 점,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 이후부터 65세로 변경되는 점 등도 근거로 제시했다.

21일 전합은 박 모씨가 수영장 운영업체 I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사망한 피해자의 일실수입(사고 없이 계속 일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미래 수입)을 산정하기 위해선 경험칙상 추정되는 가동연한을 정하거나 가동연한을 다르게 인정할 만한 사실이 있는지를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원심은 종전에 따라 만 60세로 인정했고, 이로써 가동연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덧붙였다. 육체노동 가동연한은 일반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령의 상한을 말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육체 노동자뿐 아니라 사무직 근로자도 해당되는 개념이다.

판결에 따르면 박씨는 2015년 8월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로 네 살 아들이 사망하자 수영장 운영업체 I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액과 위자료 합계 4억9354만원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앞서 1·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박씨 아들이 성인이 된 때부터 60세가 될 때까지 육체노동에 종사해 벌었을 수익을 2억8338만원(생계비 공제)으로 인정한 뒤, 수영장 업체의 과실 비율을 60%로 보고 1억7416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에 2심은 추가 위자료로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다만 3명의 대법관은 이러한 결정에 동의하면서도 별개 의견을 냈다. 조희대 대법관(62·13기)과 이동원 대법관(57·17기)은 "제반 사정에 비춰 가동연한을 만 63세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김재형 대법관(54·18기)은 "가동연한을 일률적으로 만 65세로 특정하는 건 적절치 않아 '만 60세 이상'이라고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다수 법률 전문가들은 이날 대법원 판단 취지에 공감했다. 허윤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법은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험사 등 기업에 부담이 증가할 수 있겠지만, 100세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당한 판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가동연한 상향으로 정년 연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업이 많은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부담이 가중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송광섭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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