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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김병익 칼럼] 한갓진 글쟁이의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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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라는 무해무득한 문필업은 타인과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참으로 편한 직종이다. 그럼에도 그 ‘쓸모없는 쓸모’ 덕분에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 학문적 발전이 상당히 촉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겨레

김병익
문학평론가


시간에 대한 갖가지 지식들을 모은 데만트의 <시간의 탄생>에서 시간과 관계없는 뜻밖의 대목을 보고 실소했다. “나는 문장을 먹는다, 하지만 그 의미를 모른다. 책은 나의 집이지만 난 무식자이다. 나는 뮤즈들을 먹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나는 뭐게? 4세기 로마 시대의 이 수수께끼 답은 ‘책벌레’고, 은유로든 직유로든 내가 그 허망한 책벌레임을 깨달으면서 자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화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책 언저리에서 50년 넘게 살아왔다. 도서 담당기자, 출판사 편집자, 발행인이 내 직업이었고 문학비평가, 문필가가 내 행세였으며 다른 활동이나 운동은 못 하면서 책으로 평생의 거의를 보내온 독자였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의 비아냥처럼 아는 것도 얻은 것도 없었고 사상가는 물론 학자도 못 되었고 책장사, 다행스럽게 본다면 ‘글쟁이’로 한갓지게 살아온 것이다.

얼마 전 묵은 글들을 정리하다 <나는 왜 기자로 남아 있는가>란 45년 전의 내 글을 발견했다. 유신의 억압이 지식사회에 가해지면서 적잖은 기자들을 정부의 대변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비판적인 ‘일부 지식인들’을 탄압하는, 망치와 미끼로 지식인들에 권력이 노골적으로 유혹과 견제의 양면작전을 쓰기 시작하던 때였다. 언론에 대한 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기자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지식 사회에 대한 비열한 정책을 증언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글이었다. 그 글은 일반인에 그리 눈에 뜨이지 않는 <대학신문>에 기고한 것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일본 시사주간지 <세계주보>(1974.6.4)에 ‘고뇌하는 한국 언론계’란 해설과 함께 번역 게재되었다. 신문사를 출입하는 ‘남산’ 기관원이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점잖게 내게 그 경위를 묻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글이 권력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권력 앞에서 기자로서의 무력과 아세(阿世)를 탄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그 글로부터 한 해가 못 되어 나는 신문사에서 해직되어야 했다.

그즈음 나는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에 대해 예민했고 ‘지식인’과 ‘지성인’을 구별하며 정치적 권력에서 독립적인 지식인의 태도와 처세에 대해 자주 따져보았다. 나는 정치학과 출신임에도 정치와 무관하게 지낸 것을 다행스레 여겼고 그럼에도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지도 않았다. 실제로 건달 유방이 한(漢)의 건국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장량 등 현신 덕분이었고 한량 유비도 제갈공명이 없었다면 삼국지의 삼걸에 끼지 못했을 것이다. 홍성원의 중편 <무사와 악사>는 지식인을 통치자의 거동 앞에서 피리를 불며 권력자의 위세를 높여주는 악사로 비유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본 것도 권력과 지식사회의 대결에서 지식인들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식인의 여론이 편협한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세기 전의 고속도로 건설과 한글전용, 20년 전의 문화개방에 대한 지식집단과 예술계의 비판이었다.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여론들이 그 도로를 이용할 물량도 차량도 없이 막대한 경비를 들여 국토를 휘젓는 공사를 벌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대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 여기에 적중했다. 경부 간의 큰길이 뚫리면서 이용자들의 편의가 대폭 늘었을 뿐 아니라 물류소통이 원활해졌고 자동차 산업, 이어 철강업이 불끈 일어나면서 오늘의 한국 경제의 고속도로가 놓이게 되었다. 한글전용은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이 제안했지만 학계, 교육계와 정계조차 비판적이어서 단념했던 것을 10여년 후 중고등 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 제한으로 우회해 강행되었다. 4·19세대로 자부한 나도 한자를 시용하지 못함으로써 올 지적 손실을 들어 비판했지만 그럼에도 한글전용은 계간지와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슬그머니 번지기 시작했고 1980년대 말에는 일반 잡지와 단행본으로, 90년대에는 일간지까지 한글전용으로 거대한 문화적 변혁을 불러왔다. 글줄도 내리닫이에서 가로쓰기를 이끌어온 한글전용은 권력의 강요도, 지식인들의 고집도, 독자들의 주문도 없이 소리 없는 추세로 진행되었다.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요즘 번역자들이 옮긴 글들이 한문을 배운 일어 세대의 번역서보다 훨씬 부드럽고 우리말다운 문체로 읽히게 된 이 변화는 지식인들의 논리가 이른바 부드러운 문화적 트렌드로 녹아든 때문이다. 우리 문자생활에서 컴퓨터 수용이 용이했던 것은 이 덕분이 컸을 것이다.

또다른 의외의 사태는 새 세기에 들면서 한-일 간의 문화 개방 시점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전개되었다. 일본 문화의 수용을 허용하는 이 정책에 대해 영화인들을 비롯한 숱한 문화인들의 저항이 뜨거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일본을 기점으로 드라마와 영화, 팝송과 패션의 ‘한류 문화의 국제화’였다. 위기에 부닥친 우리 예술계가 국력의 증가를 업고 창의의 열정을 피워낸 덕분이리라. 현안에 대한 지식인의 논리적 예측이 빗나가고 ‘정주영 공법’처럼 고착된 틀을 깬 지도자의 상상력이 학자들의 사유 틀을 뛰어넘은 것이다. 권력이 지식인들보다 강한 것은 반드시 칼의 위협 때문이 아니고 많은 경우 지식인들의 비좁은 소견 탓이기도 했다. 홉스봄은 <20세기 역사>에서 “경제적 성패와 경제이론가들의 탁월성 사이에는 눈에 띄는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각주에서 “<미국경제평론>에 인용된 한국이나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몇 명이나 되는가?”라고 묻는다.

오래전의 내 글들을 훑으며 그래도 내 생애가 한갓진 글쟁이로 주춤거려온 것이 다행이었다고 고마워하는 나를 깨닫는다. 그것은 내 30대에 <나는 왜 기자로 남아 있는가>의 자문을 연장한 자기 확인이기도 하였다. 덕분에 나는 품위 없는 정치인도, 자칫 시비에 걸릴 공무원 노릇도, 경쟁에 시달릴 경제인도 피할 수 있었다. 나의 사회생활은 기자생활처럼 현장의 바깥에서 관찰하고 평가하기를 버릇해왔다. ‘글쟁이’라는 무해무득한(내가 너무 자학하는가?) 문필업은 타인과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참으로 편한 직종이다. 그럼에도 그 ‘쓸모없는 쓸모’ 덕분에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 학문적 발전이 상당히 촉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4·19로부터 몇 차례의 변혁을 통해 대학생과 교수, 작가와 문필가, 학자와 예술가, 종교인과 언론인 등 지식인의 범주에 들 인사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민주화와 평등의 미덕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고 나는 좁은 시선과 거친 문장으로나마 그 의미 깊은 진전을 증언할 수 있었다.

근래 이런저런 지식의 역사들을 보면서 인류사가 무지를 깨우쳐 몽매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밭은 눈앞에서는 지식인들이 자주 패배했지만 먼눈으로는 지식인들이 힘들여 연 길을 따랐다. 말과 문자의 발명에서 시작된 인류 문화는 ‘축의 시대’에 자기 성찰을 통해 인간의 덕성을 깨쳤고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과 인문학은 천동설의 인간 중심적 아집과 근본주의적 맹신으로부터 해방을 얻었다. 이제 인류의 도전적 시도가 무한 우주의 경계로 날고 나노의 미시 세계로 깊어지는 가운데 자유와 평등의 일상화로 삶은 의미화되고 있다. 이런 세계를 바라보고 배우며 그 감동을 드러내는 자유지식인의 자리가 얼마나 뿌듯한 것인가. 비록 한갓진 자리에서, 그리고 볼품없는 사유로나마 그 형이상의 높이와 실제의 착잡한 세상을 바라보며 혼자라도 그 긴장을 즐길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이 넘보아도 아까움이 없는 공익 자유재로 향유될 만한 것이다. 나는 왜 기자로 남았는가란 괴로운 질문을 던지던 젊은 시절의 자학을 넘어 이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 문화적 호사를 관찰하며 플라톤이 제일 좋은 자리로 친 관중석을 노년의 특권으로 즐겨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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