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3평 남짓한 작은 감방 안에 30명 가까운 여성들이 서로 밀착한 채 모여 있다. 발 디딜 틈도 없다. 나이가 들었거나 몸이 불편한 몇몇만 겨우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 중엔 임산부도 있다.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다리가 굳어 경련이 오거나 마비된다. 여성들은 꼿꼿하게 선 채로 앞사람을 따라 연신 옥사 안을 뱅뱅 돈다. 종일 걷고 또 걷는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유관순은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뒷 일을 생각 못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당했다. 제 몸이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나라와 부모를 빼앗아간 일제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연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한 명 한 명 외치기 시작했다.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
그리고 1년 뒤 유관순의 입에서부터 시작된 또 다른 한 마디는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봄날 싹이 움트듯 웅크리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두 팔을 뻗고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3·1운동 1주년을 기념해 1920년 여옥사 8호실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여옥사 8호실에는 유관순 이외에도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했던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감옥 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기른 임명애 등 다양한 인물들이 수감돼 있었다.
영화는 유관순을 중심으로 3평 남짓한 작은 옥사 안에서 일제에 당당하게 맞선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주며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여옥사 8호실 여성들이 줄줄이 서서 옥 안을 하염없이 걷는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상이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알고 있었어도 고문과 폭행 등 일제의 야만적인 행태를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고아성은 몰입도 높은 연기로 관객들의 감정을 움직인다. 유관순의 슬픔부터 불안한 심리, 당당함, 리더십까지, 내면부터 외면까지 유관순 자체가 됐다. 여기에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 주목받는 신예들이 펼치는 연기 앙상블이 놀랍다. 그때의 여옥사 8호실 사람들처럼 단단하게 하나가 돼 열연한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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