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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조한욱의 서양 사람] 오 수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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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세기 전반 미국에는 민스트럴 쇼라고 하는 대중 공연의 장르가 성행했다. 춤과 노래와 단막 코미디극으로 구성된 즐거운 여흥이었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면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간혹 흑인 공연자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무대에는 얼굴을 검게 칠한 백인들이 올라와 흑인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흑인이 우둔하고 게으르고 무사태평이라는 내용으로 백인 청중들을 만족시키곤 했다.

스티븐 포스터의 ‘오 수재너’는 그러한 공연에서 가장 널리 불린 노래다. 이 노래가 작곡된 1847년에는 아직 저작권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4년 사이에 21명이 이 노래에 대한 판권을 주장했다. 따라서 포스터는 이 노래로 아주 약소한 금액만을 벌었지만, 그 사실 자체는 그 노래의 대중적인 인기를 대변한다. 이후 포스터는 악보가 팔리는 대로 인세를 챙겨 그는 미국 최초의 전업 작곡가가 되었다.

실상 이 노래의 가사는 말이 되지 않는 난센스로 가득하다. 가사의 주인공은 무릎에 밴조를 차고 앨라배마에서 왔다고 하는데 어깨가 아닌 무릎에 밴조를 걸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가 떠나온 날에는 비가 너무도 많이 와 날씨가 메말랐고, 태양은 너무 뜨거워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는 내용을 노래하는 가수들은 때때로 그 부분에서 웃기도 한다.

그 무의미한 가사들이야 단지 웃기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펜실베이니아로 온 독일계 이주민들이 개사한 노래의 2절은 충격적이다. 거기에는 “전기 같은 분비액이 급증하여 검둥이 오백명을 죽여 버렸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흑인들이 노예 해방 이전의 농장에서 백인 농장주들 아래에서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래들이 만연하였던 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가사였다.

그 가사는 공공연히 인종주의를 내세웠던 밴조 연주자이자 배우였던 해리 브라운에 의해 1916년에 취입되었다. 다행히도 오늘날엔 그 가사를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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