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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아침햇발]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기술 / 박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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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병수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래(협상) 예찬론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과거 <거래의 기술>이란 책까지 냈고, 그 책에서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이런 ‘거래광’에게 이번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도저히 실무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유혹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한-미 간 협상이 한창이던 때 틈만 나면 ‘안보 무임승차론’을 들먹이며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압박하곤 했고, 지난해 12월엔 ‘1.5배 증액을 원한다’고 구체적 수치를 미 언론에 슬그머니 흘려 압박 강도를 끌어올리는 등 ‘거래의 기술’을 몸소 실천했다.

결국 막판까지 진통을 겪던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얼마 전 지난해보다 8.2%나 늘어난 1조389억원에 타결됐다. 애초 한국 협상팀은 “1조원 이상은 안 된다”는 배수진의 각오였으나, 미국의 대폭 증액 요구를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다. 이번 협상도 터무니없는 ‘엄포’로 위기를 조성한 뒤 적당히 협상의 실리를 얻어내는 ‘부동산 개발업자’ 트럼프 특유의 협상 방식이 통용된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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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담당자 입장에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증액 압력을 행사한 상황에서 이런 정도 결과면 그럭저럭 ‘선방한 것 아니냐’고 자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민단체의 평가는 냉혹한 편이다. 오랫동안 주한미군 문제에 천착해온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이 낸 자료를 보면, 방위비분담금은 2014년 이후 매년 총액의 10~20% 정도를 쓰지 못하고 남겨 2017년 12월 말 현재 미집행 방위비분담금이 1조789억원에 이른다. 또 미군은 2009~2017년에 방위비분담금을 해마다 평균 1700억~1800억원씩 평택기지 이전사업으로 전용했는데, 이제 기지 이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그만큼 삭감 요인이 생겼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명박 정부 때의 2.5%, 박근혜 정부 때의 5.8%보다 더 많은 증액을 허용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

방위비분담금에서 발생한 이자소득의 환수 여부가 불투명하게 처리된 것은 정부의 약속 위반이다. 미군은 2002년부터 방위비분담금을 기지 이전비용으로 전용하기 위해 쓰지 않고 미 국방부 소유의 은행에 적립하기 시작했다. 이 적립금은 2000년대 후반 한때 1조원을 넘겼으며, 아직까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2880억원이 남아 있다. 논란은 이 적립금에서 이자소득이 발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미군이 우리 돈으로 이자놀이를 한 것 아니냐”며 이자수익 환수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2014년 4월 국회에 이자소득 부분을 “차기 협상 때 총액 규모 등에서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 결과에 정부 약속대로 이자소득분의 감액이 반영된 것 같진 않다. 외교부는 이번 협상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총액에 반영됐는지에 대해선 아직 딱 부러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자수익 규모는 ‘평통사’가 법원 등에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산정한 바에 따르면 2006~2007년 2년 동안에만 566억원이고, 2002년부터 따지면 모두 3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협상은 유효기간이 1년이어서, 곧 내년분 분담금 협상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부터 “앞으로 더 올라갈 것”이라며 대놓고 추가 압박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도 트럼프식 협상 스타일은 이제 처음이 아니다. 겪어본 만큼 정부의 철저한 대비를 기대한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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