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낙태 문제는 현대의 기준, 국제 인권의 기준서 다뤄져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낙태죄 위헌 포럼’ 사례 발표, 그레이스 윌렌츠 앰네스티 아일랜드 조사담당관

경향신문

21일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 행사에 참석한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의 그레이스 윌렌츠 조사담당관(오른쪽)이 아일랜드의 낙태죄 폐지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 사례’ 한국엔 추천 안 해…인권은 투표 사안 아니다

비범죄화 운동과 함께 여성 낙태권 보장하는 법률 제정도 필요


35년의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10차례 교체됐다. 국민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 낙태죄 폐지 국민투표가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사이 수많은 여성들이 직접 나섰다. 캠페인을 벌였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으며, 전국적인 토론에 참여했다. 용기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명한 여론 지형도 변화했다.

그레이스 윌렌츠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 캠페인·조사 담당관은 낙태죄 폐지 국민투표가 치러진 지난해 5월25일을 “여성 권리에 대한 역사적인 승리의 날”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21일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 포럼에 참여해 이같이 말했다. 윌렌츠는 아일랜드의 사례를 한국에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인권은 투표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윌렌츠는 낙태죄가 폐지되기 전까지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일들을 전했다. “17만명이 다른 나라에 가서 낙태 수술을 받았어요. 그보다 많은 여성이 인터넷에서 구입한 약으로 낙태를 했고요. 불법 낙태는 여성의 신체, 정신적 건강을 위협했습니다.” 국민투표 결과, 낙태 금지 관련한 헌법 조항의 폐지에 찬성한 쪽은 66.4%로 반대(33.6%)를 압도했다.

가톨릭 신자가 다수로 낙태에 특히 보수적인 국가 아일랜드에서 이 같은 결과는 의외였다. 변화는 2012년 임신중절수술을 거부당한 한 여성이 숨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인도 출신 치과의사였던 여성은 임신 후 태아가 생존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불법이라는 이유로 낙태 수술을 거부당했고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지금 아일랜드에서 낙태는 죄가 아니지만, 전면 허용되지도 않았다. 아일랜드 의회는 지난해 12월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임신중절법안’을 가결했다.

윌렌츠는 “낙태 비범죄화 운동과 함께 가장 힘쓴 것은 여성들이 낙태 수술을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며 “유엔 등에서도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여성의 요청이 있다면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고를 냈다”고 말했다. 윌렌츠는 “낙태의 문제는 현대의 기준, 국제 인권이라는 보편적 기준에 의해서 다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은 한국 343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가 주최했다. 포럼 발제를 맡은 자캐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총무 신부는 “종교는 사회를 통제하는 기구가 아니라 사회와 동행하는 존재이며 가난, 이주, 장애 등 다양한 조건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면서 “여성이 아니라 낙태죄가 문제”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태아는 영양공급, 정서적 보살핌 등 모체의 지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생명을 단순히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체의 생명을 위해 태아의 생명권도 제한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르면 다음달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선고가 열린다. 시민사회단체는 포럼 내용을 의견서로 만들어 헌재 선고 공판에 제출할 예정이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