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불능화 기술적으로 2~3개월… 정치 동력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26일(현지시간)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토대로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 인프라 공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난해 6월 전했다. 같은 달 21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영변 핵시설의 냉각시설 개선 공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이 6ㆍ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의 ‘9ㆍ19 평양공동선언’ 제5조에 명시된 북한 입장이다. 북한이 공언한 만큼 영변 핵 시설을 어떻게 할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하노이 서밋’ 테이블에 오른다는 건 기정사실에 가깝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7~28일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21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미국은 핵 물질 생산 시설 폐기(원자력 분야)와 핵 무기 제조 시설 폐기(비원자력 분야) 순으로 비핵화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며 “이런 구상대로라면 영변 핵 시설이 이번 회담의 대상이 될 공산이 아주 크다”고 내다봤다. 또 영변 핵 시설이 북한 핵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은 만큼 초기 단계부터 폐기에 집착하는 대신 일단 가동을 멈춘 뒤(동결) 시설을 못 쓰게 만드는(불능화) 현실적 타협안을 먼저 양측이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 영변 주요 핵시설. 그래픽=김경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390개 건물 달린 대규모 영변 단지
1960년대 평안북도 영변에 설립된 원자력연구소가 시초인 영변 핵 시설은, 최소 390개 부속 건물을 포함하는 거대한 단지다. 북한이 ‘핵 개발 심장’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는 핵 연료 생산부터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 물질의 생산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5메가와트(MWe) 원자로는 연간 7㎏가량의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은 “100% 가동된 적이 없어 실제 연간 생산량은 5㎏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이 보유했다고 정부가 추정하는 플루토늄 50여㎏(2018년 국방백서) 중 대부분은 여기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준공됐지만 현재 미운용 상태인 것으로 짐작되는 100메가와트(MWth) 경수로는 연간 10~15㎏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지만 품질이 무기용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1994년 건설이 중단된 50메가와트(50MWe) 원자로는 현재 재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은 이미 노후화한 이들 원자로보다 2010년 11월 가동되기 시작한 우라늄 농축 시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북핵 권위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2010년 당시 “영변에 설치된 2,000개의 원심분리기에서 연간 40kg 정도의 HEU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었다. 이후 우라늄 농축 시설은 규모가 두 배가량 확대된 것으로 전해진다.
핵 탄두 1개에 플루토늄은 4㎏, 우라늄은 25㎏ 정도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인데, 북한의 핵 탄두 보유량은 20~60개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현실적 방안 거론되는 영구적 불능화
북핵 능력 전체를 놓고 볼 때 영변 핵 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협상 카드로 내놓은 게 이미 낡아 쓸모가 없어졌거나, 이미 영변 밖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조성해놨기 때문일 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핵 물질 생산이 전체 공정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영변 핵 시설이 생산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영변을 중심으로 한 비핵화 협상이 무용하다고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만 북한이 영변 시설을 몽땅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이번이) 마지막 회담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차기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라는 게 전문가들 해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를 논하기보다 ‘영구적 불능화’를 우선 확보하는 현실적 방안을 양측이 찾으려 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불능화는 해체, 폐기 이전에 시설을 사용 불가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홍 실장은 “영변 핵 시설을 핵 시설로서 가치가 없도록 만드는 데는 기술적으로 2~3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 정치적 동력만 확보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지난해 5월 풍계리 핵 실험장의 자체 폭파가 오히려 대북 불신을 자극했던 사례 등을 감안할 때, 차후 협상 진전을 위해 북한이 미측이 요구하는 신고ㆍ검증에 일부나마 합의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검증은 25년간의 북핵 협상 역사에서 한번도 통과하지 못한 관문”이라며 “영변 핵 시설 검증에 합의한다면 가보지 못한 길을 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2002년 북한이 매체를 통해 공개한 영변 핵 시설 일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