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패랭이꽃/김해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신문

오용길 / 서울-청계5가(137×93㎝, 화선지에 수묵 담채) - 이화여대 명예교수. 동양화가들의 단체 후소회 회장


패랭이꽃/김해화

기둥 넘어져 무너지는 스라브판과 함께
야윈 철근쟁이 한 명
늙은 목수 한 명
무너졌습니다


넘어진 기둥 일으켜
새로 온 젊은 목수들 합판을 깔고
튼튼한 철근쟁이들 몰려와
좀 더 튼튼하게 철근을 넣어도
무너진 사람들 일어서지 않습니다


살아남아 캄캄한 가슴으로
쓴 소주 마시던 사람들
가벼운 바람에
무재해 깃발 한 번 흔들리면
뜨거운 눈물로 피 묻은 이름 씻어
가슴에 묻습니다


휘어진 철근토막
부러진 나무토막
불도저 삽날에 밀려
피 묻은 여름도 함께 파묻힌 공사장
철근을 메다 말고 담배 한 대참
가을 서늘한 햇살에 젖는데


철근 야적장 옆 언덕 위
철 지난 패랭이꽃 붉습니다


-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살다 보면 지옥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타인의 몫을 빼앗는 이들이 죽은 뒤 천국에 간다면 정말 아닐 것 같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 돌보라고 힘을 준 장관, 국회의원들이 자기 몫만 챙겼는데 천국에 간다면 신은 노망했거나 사탄의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비정규직 젊은 청춘들이 외주 공사장에서 죽어 간다. 그들이 지닌 낡은 가방 안에 공통적으로 컵라면이 들어 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가방 안에 컵라면을 넣고 힘없는 이들을 찾아다닌다면, 그때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곽재구 시인

▶ 부담없이 즐기는 서울신문 ‘최신만화’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