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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둘만 모이면 “넷플릭스 같이 할래?” “난 이미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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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넷플릭스가 바꾼 풍경들

2016년 국내 상륙 2년 만에 돌풍

알고리즘 통한 맞춤형 추천으로

소수자, ‘아재’ 취향까지 잡아내

최대 4명까지 아이디 공유 가능

친구들간 구독료 나눠내기 유행

미국에서는 지상파·케이블 해지하는

‘코드 커팅’ 현상…한국도 조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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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봐. 재밌어.” “그 드라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나랑 넷플릭스 같이 할래?” “난 이미 ○○랑 하고 있지. 너 아직 안 해?”

“‘킹덤’ 다 봤어. 이제 뭘 정주행할까.”

요즘 친구 두세명만 모이면 하는 말이다. 에스엔에스(SNS) 등에는 “○○○랑 비슷한 드라마 추천해주세요”라는 질문을 흔히 볼 수 있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초기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상륙 2년 만에 대한민국 일상의 풍경을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넷플릭스의 정교한 맞춤형 추천 때문에 시청을 멈추지 못하는 ‘넷플릭스 폐인’이 양산되고 있고, 친구들끼리 구독료를 나눠 내고 아이디를 공유하는 ‘넷플릭스계’도 유행이다. 요즘 ‘인싸’(인사이더)가 되려면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어딜 가든 “넷플릭스에서 그거 봤어?”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는 훨씬 화제성이 커진다. <스카이 캐슬>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1월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자체 제작) 시리즈 ‘킹덤’(조선시대 배경 좀비 드라마)이 인기를 끌면서 넷플릭스와 제휴한 통신사 엘지유플러스도 반사이익을 봤다. 엘지유플러스는 ‘킹덤’ 공개 직후 신규 가입자가 닷새 동안 세배 늘었다고 밝혔다. 통신망 증설까지 검토한다니 ‘킹덤 효과’가 따로 없다. 넷플릭스가 도대체 뭐길래.

알고리즘으로 맞춤형 추천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유료 인터넷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다. 1997년 미국에서 디브이디(DVD) 대여 사업으로 출발한 뒤 2007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6년 1월에 한국에 진출했다. 넷플릭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세계 사용자는 1억3700만명이다. 와이즈앱(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자료를 보면 국내 넷플릭스 사용자는 지난해 1월 34만명에서 12월 127만명으로 1년 새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넷플릭스는 오티티(OTT·Over The Top) 플랫폼으로 불린다. 톱(셋톱박스) 없이 월 단위로 정기 요금을 내고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영상을 보는 방식이다. 지상파나 케이블티브이보다 제공되는 콘텐츠가 다양한데다, 스마트폰·태블릿·티브이·컴퓨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시청할 수 있다. 특히 알고리즘에 기반한 맞춤형 추천은 넷플릭스가 ‘폐인’을 만들어내는 핵심 장치다.

예를 들어 기자의 경우 최근 넷플릭스에서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영화를 시청했다. 남성과 여성이 바뀐 세상을 그린 영화다. 남자 중심인 ‘원래 세상’에서 잘나가던 남자 다미앵은 우연한 충돌사고로 여자 우위인 ‘이 세상’에서 살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성 의식이 전환된 역지사지의 세계를 그려 다양한 젠더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시청하고 나니 넷플릭스는 알아서 <페미니스트 닫힌 문을 열고>라는 다큐멘터리와 ‘탈코르셋’의 과정을 그린 영화 <어느날 인생이 엉켰다>를 추천해줬다. ‘페미니즘’ 코드로 기자의 취향을 분석했을 것이다.

넷플릭스 모바일 앱에 들어가면,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콘텐츠와 이전에 봤던 콘텐츠들이 뜬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 & 버라이어티가 자리하는데, 이는 국가별 맞춤 콘텐츠들이다. 그 아래로 지금 뜨고 있는 콘텐츠, 최신 등록 콘텐츠를 지나면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 카테고리가 있다.

이런 맞춤형 추천은 사용자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꼭 집어내 만족도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계속 유사한 내용만 추천함으로써 취향의 영역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른바 기존의 생각이나 취향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확증편향’ 문제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는 “넷플릭스 방식의 시청은 티브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던 과거 시절에 비해서 사용자 만족도는 올라가는 대신 예상 못했던 프로그램을 우연히 발견하는 일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며 “사용자 맞춤 알고리즘 시대에는 넷플릭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뿐 아니라 소셜미디어 여론 형성이나 뉴스 소비 양태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2030에서 ‘아재’까지 폐인

“지상파나 케이블에는 40~50대 남성의 취향에 맞는 드라마나 콘텐츠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는 장르물을 좋아하는데, 넷플릭스에는 장르물이 무궁무진하다. 친구들이나 지인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뭐가 재밌다고 하더라’는 말이 도는데, 거기 한번 빠져들면 폐인이 된다. 어쩌다 지상파에서 괜찮은 드라마가 나오면, 그것도 넷플릭스에서 다 볼 수 있다. 굳이 지상파에서 본방사수를 하거나 아이피티브이에서 별도로 돈을 내가며 볼 필요가 없는 셈이다.” 콜롬비아 마약왕을 다룬 ‘나르코스’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폐인이 됐다는 회사원 한석진(가명·46)씨는 “퇴근 후 소파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넷플릭스를 본다”며 “특히 지난해 엘지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제휴한 이후로는 티브이 화면으로도 볼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2030세대뿐 아니라 한씨 같은 ‘아재’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던 넷플릭스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어떤 취향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이다. 넷플릭스는 구체적인 콘텐츠 보유량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유럽·호주·일본·인도 등 세계 곳곳에서 제작한 유명 콘텐츠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프렌즈’, 영국의 인기 드라마 ‘셜록’ 등 대중적인 콘텐츠는 기본이다. 티브이에서는 보기 힘든 ‘하우스 오브 카드’(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정치드라마), ‘맨헌트: 유나바머’(프로파일링을 소재로 한 범죄스릴러) 같은 장르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소수자나 비혼여성 등을 겨냥한 ‘틈새상품’도 있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사이비 종교단체에 의해 15년간 감금됐다가 구출된 여성의 뉴욕 생활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뉴욕 연방 여자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 같은 여성 서사 중심의 드라마, 페미니즘 성향의 ‘거꾸로 가는 남자’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대중화되지 않은 장르인 ‘앨리 웡: 베이비 코브라’ ‘하산 미나즈의 금의환향’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도 볼 수 있다.

콘텐츠의 질적인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스트리밍 서비스 최초로 미국 텔레비전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제작 영화 ‘로마’는 베니스(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가 자신들이 직접 투자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 최대한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점도 좋은 콘텐츠를 끌어들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킹덤’ 제작발표회에서 김은희 작가는 “처음부터 공중파에서는 각종 제약이 많아 방송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창작자의 자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장해준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광고가 없다는 점,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음에도 비교적 싼 편인 가격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제공하는 요금제는 ‘베이직’(1명 접속·월 9500원) ‘스탠더드’(2명 동시 접속 가능·월 1만2000원) ‘프리미엄’(4명 동시 접속 가능·월 1만4500원) 3가지다. 스탠더드와 프리미엄은 여러명이 같은 계정(ID)으로 접속해 동시에 시청할 수 있어 가족·친구 등이 월 구독료를 나눠 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아이디를 공유하게 만드는 이런 넷플릭스의 전략은 친구들 사이에서 일종의 ‘넷플릭스계’를 만드는 유행을 낳고 있다.

신현진(31)씨는 친구 세명과 함께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4명이 동시 접속이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해 한달에 1만4500원을 나눠서 낸다. 각자의 계정을 따로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시청 이력이 섞일 염려도 없다. “넷플릭스 같이 하자”는 말은 이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다.

혼자 넷플릭스를 사용하면서 여러개의 프로필을 만들 수도 있다. ‘드라마’ ‘다큐’ ‘예능’ 등 장르별로 프로필을 만들 수도 있고, 드라마 중에서도 ‘스릴러’ ‘로맨스’ 등으로 나눠 만들어 이에 맞는 맞춤추천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다.

티브이가 사라진다?

넷플릭스의 성장은 지상파나 유료방송(케이블티브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이다. ‘코드 커팅’이란 말 그대로 코드를 자른다는 뜻으로, 지상파나 케이블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오티티 등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 티브이가 없다’는 뜻의 ‘제로 티브이’(Zero-TV)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미국 시장은 2015년 이후 유료방송서비스 가입자는 감소하는 반면 넷플릭스, 아마존 등 오티티 가입자는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유료 가입자(5100만명)가 케이블 가입자(4800만명)를 앞지르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2007년 넷플릭스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지 11년 만이다.

국내에선 유료방송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코드 커팅 현상이 아직 뚜렷하진 않은 상황이다. 미국 유료방송 월 요금은 보통 50~100달러(5만6천~11만2천원)인 반면, 국내 요금은 보통 1만~2만원대다. 지난해 11월 씨제이이엔엠(CJ ENM)이 자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90%가 여전히 티브이를 유지하며 유료방송에 가입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젊은 시청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데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케이블 방송을 해지했다” “티브이를 없애고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만 본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2년째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본다는 김송희(33)씨는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한국 드라마나 예능이 너무 시대에 뒤처지고 주류적인 정서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 채널이 몇백개인데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어서 티브이를 안 켠 지 오래됐다. 케이블 방송 계약 기간이 끝나면 해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떤 세대, 어떤 취향이든 딱 맞춰주는 넷플릭스의 등장이 시청자들의 ‘눈’을 한껏 높이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콘텐츠 시장에 몰고 올 후폭풍도 이미 시작된 듯하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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