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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비행기 5시간 거리인데…김정은, 왜 사흘 간 열차 이동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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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남순강화’ 열차 대장정

뉴스분석/김정은 왜 열차 택했나

중국 통과하는 거리만 4천㎞

전폭 지원 받아 북중협력 강조

광저우 시찰하면 개혁개방 메시지

북-중-베트남 사회주의국가 협력메시지

대외적 트럼프 압박·내부 단속 효과도

문대통령 구상과 일치 ‘철도 협력’ 의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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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하노이시에서 진행되는 제2차 조미수뇌상봉과 회담(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23일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역을 출발하시였다”고 <노동신문>이 24일치 1면으로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공식친선방문하시게 된다”고 <노동신문>이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항공편을 놔두고 왜 굳이 전용열차에 올랐을까? 평양~하노이는 전용기로 5시간이면 충분하다(항공거리 2760㎞). 반면 열차로는 4500㎞, 중국 통과 거리만 4000㎞에 이르는 ‘사흘 대장정’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참매 1호(전용기)’를 배합하거나, 중국의 고속철 또는 전용기를 빌려 탈 개연성이 남아 있긴 하다. 다만 지금까지 정황으론 전용열차가 주된 이동수단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회담 일정과 전용열차가 평양을 떠난 시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주로) 전용열차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겨레

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두차례 베트남 방문(1958년 11월27일~12월3일, 1964년 11월8~16일)에 사실상 중국이 제공한 전용기를 이용한 선례와도 다른 선택이다. ‘5시간 이동’ 대신 굳이 ‘사흘 이동’을 선택한 김 위원장의 판단은 평소 ‘국제적 수준’과 ‘실용’을 강조해온 리더십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착오적 선택’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예상되는데도 ‘열차 대장정’을 선택한 데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안팎에 던지려는 전략적 메시지와 편의성 등을 두루 고려했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무엇보다 ‘열차 대장정’은 “한 참모부”를 자임하는 북-중의 전략적 협력, 광저우 등 중국 남부 개혁개방 거점 시찰, 김일성·김정일을 잇는 리더십의 ‘역사적 연속성’ 등을 강조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우선 ‘열차 대장정’은 중국 시진핑 지도부의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 없이는 선택할 수 없는 카드다. 중국은 지금 30억명이 이동한다는 춘제 연휴 ‘특별수송기간’(1월21일~3월1일)이다. 당국의 철저한 교통통제는 중국 인민의 불편·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국내 정치적 부담을 짊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강고한 북-중 협력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시진핑 지도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으로선 지난해 6·12 싱가포르 회담 때 ‘참매 1호’가 아닌 중국 쪽이 내준 전용기를 이용한 선례처럼 ‘열차 대장정’ 퍼포먼스로 ‘내 뒤엔 중국이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판단이 깔린 듯하다.

‘열차 대장정’은 베트남 지도부의 전폭적인 협력·지원도 필수다. 공식적으론 ‘사회주의국가’를 자임하는 북-중-베트남의 3각 협력을 ‘사회주의 연대’로 포장할 수 있다. 북-중 협력 환기가 안팎에 두루 보내는 메시지라면, ‘사회주의 3각 연대’ 모양새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의 결말을 걱정하는 북한 내부 일부 세력을 겨냥한 대내용 메시지로 활용될 수 있다.

‘열차 대장정’은 베트남과 국경을 접한 핑샹에 이르기 전에 톈진~우한~창사~광저우 등을 거쳐야 한다. 광저우는 덩샤오핑이 설계·실천한 ‘개혁개방’의 도드라진 상징이다. “경제 집중”을 천명한 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이 개혁개방 의지의 피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돌아오가는 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차 북-미 정상회담 앞뒤로 시 주석과 2·3차 회담(2018년 5월7~8일 다롄, 6월19~20일 베이징)을 했고, 지난 1월7~10일에도 베이징을 찾아 시 주석과 4차 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이 ‘열차 대장정’ 도중에 중국 남부 광저우에서 이벤트를 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이으며 개혁개방 메시지를 발신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열차를 이용한 정상회담 방식은 그 자체로 ‘김일성·김정일 리더십’을 연상케 하는 국내정치적 효과가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 11월 광저우에 들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6년 1월 광저우·주하이·선전·우한 등 ‘덩샤오핑 남순강화’(1992년 1월18일~2월22일)의 거점 도시를 시찰했다. 김 주석이 58년과 64년 방중 계기에 베트남을 방문했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하노이행에 중국은 공식적으론 ‘경유지’라는 성격의 차이가 있어, 김 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만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광저우 등을 시찰할 기회를 따로 잡기가 쉽지 않아 이번에 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은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남북 철도·도로 연결·현대화’ 합의와 문재인 대통령의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의 연장선에서 ‘다자 철도 협력’ 의지를 내비치는 것일 수 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이 신변안전 우려 때문이라 지적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신변안전 우려가 핵심이라면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로 평양을 떠난 사실을 <노동신문>으로 바로 공개할 이유가 없어서다.

‘열차 대장정’을 “업무 연속성 등 편리성을 중시한 실용적 선택”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소식통은 “전용열차는 통념과 달리 숙식과 회의, 통신 등이 편리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 준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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