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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박기자 어디가?] “합시다, 러브” 안동 만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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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여행을 마치고 나니, 기존의 꼿꼿하고 엄숙한 이미지 대신 안동 출신 유안진 시인의 말대로 ‘어제의 햇빛으로 오늘이 익는’ 곳임을 알게 됐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흐트러짐 없는 고고함을 간직함과 동시에, 기존 질서를 뒤집어 엎고 지배층 중심의 도덕률을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하회 탈춤이 있는 고장, 안동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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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의 그곳, 만휴정

‘늦은 쉼’을 뜻하는 만휴정(晩休亭)은 조선 초 문신인 김계행 선생이 낙향한 후 71세가 되어서야 지은 정자다. 이조참판에다, 왕의 잘못을 간하는 대사간까지 올라간 청백리였지만 권력다툼에 연루돼 옥살이를 마친 뒤 낙향해 일흔이 넘어서야 지은 곳, 만휴정이라는 이름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정자 아래에 있는 폭포 앞에는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내 집에는 보물은 없지만 보물로 여기는 것이라면 청렴과 결백뿐이라네)’라는 문장이 너럭바위에 적혀 있다. 그 가훈에 맞게 소박한 검은 기와지붕과 색 바랜 서까래의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 흙으로 담을 둘렀다. 누마루에 올라 병풍처럼 두른 산을 프레임 안에 가둔 처마 끝을 바라본다. 정작 사람들은 정자에는 관심이 없고, 만휴정 앞 돌다리 촬영에만 열심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가 고애신(김태리)에게 “합시다, 러브”라고 말하던 그 유명한 돌다리다. 안동에는 유진과 애신이 나룻배를 타던 고산정도 함께 볼 수 있는데 총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목책교인 월영교의 야경 또한 놓칠 수 없다. 벚꽃철이면 여행자로 붐비는 다리로, 다리 중간에 위치한 팔각정(월영정)에 올라앉으면 안동댐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를 가져와 ‘월영교’라고 이름 붙인 이 다리 아래 분수는 주말에 하루 세 차례 시원한 물줄기를 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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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고집, 안동식혜와 헛제사밥

밤이 늦도록 글을 읽느라 속이 헛헛해진 유생들이 하인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장난으로 제사상을 차리게 했다는 데서 전해진 헛제사밥. 제사 지낸 뒤 그 음식으로 비빔밥을 해먹던 안동지방의 풍습에 따라 평소 제사가 없을 때도 제사음식과 같은 재료를 마련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데, 나물과 어물, 산적, 탕국이 함께 곁들여진다. 고택스테이 조식이나 곳곳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고택한정식, 헛제사밥. 이들 4개가 바로 안동별미 4식이나, 여기에 고춧가루를 뿌린 안동식혜와 안동소주를 추가하고 싶다. 동치미 국물에 찌개를 엎은 듯한 불그죽죽한 그 색깔 덕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던 안동식혜는 잔칫날과 명절에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체하지 말라’는 뜻으로 내어오는 음식이다. 찹쌀 고두밥에 고운 고춧가루와 무채, 생강채 등을 넣은 뒤 엿기름과 물을 넣고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켜 시원하고도 맵고 달콤한 맛이 난다. 안동 양반의 꼿꼿한 고집에는 연유가 있었다.

[글과 사진 박찬은 기자 취재협조 경북도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8호 (19.03.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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