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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당신은 위암 위험 1.5배입니다”…유전자로 질병위험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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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질병 유전자 검사 서비스 논란

기업이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

정부 규제 샌드박스로 임시허용

송도 지역에서 이르면 봄 시행

마크로젠이 시작…다른 기업도 참여

유전자로 미래질병 얼마나 알까

현대과학으론 확실한 예측 어려워

질병마다 유전자 영향 정도 다르고

환경, 식습관, 운동 등도 중요 요인

민감한 의료 정보 혼란 피하려면

유전자 정보 오·남용 막는 게 중요

검사서비스 품질관리 인증제 갖추고

결과 설명해주는 전문상담 체제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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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검사로 내 몸의 미래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질병 위험을 예측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유전체기업의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임시 허용됐다. 맞춤형 건강관리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유전자 정보가 오남용될 때에는 의료와 건강 정보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신의 유전자를 검사해보니 위암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1.5배 높습니다. 식습관과 건강관리에 유의하세요.’

돈을 내면 이런 유전자 상담을 해주는 서비스가 조만간 등장할지 모른다.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유전체(게놈)분석기업에 직접 의뢰해 유전적 질병 위험을 검사받는 이른바 ‘소비자 직접 의뢰(DTC·디티시)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가 국내에서 처음 시행된다. 2월1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융합 규제 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규제 샌드박스’(특정 신산업이나 신기술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고 임시허용해주는 것. 본래 뜻은 모래놀이터) 대상 사업에 유전체기업 마크로젠의 ‘디티시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 등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 검사는 의료기관이 임상 목적으로만 시행할 수 있었으며, 기업은 콜레스테롤·탈모 등 12개 항목에 한해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할 수 있었다. 마크로젠의 이숙진 개인유전체사업부문장은 “올해 2분기 중에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 지역에 사는 성인 2000명에 한해 2년 동안 연구 목적으로 시행한다. 질병 유전자 검사 항목으로는 위암, 폐암, 대장암, 간암부터 고혈압, 당뇨병(2형), 뇌졸중, 파킨슨병 등 일반인의 관심이 높은 13개 질병이 포함됐다.

지난달 14일에는 보건복지부가 ‘디티시 유전자검사 서비스 인증제’ 시범사업(오는 5~9월) 계획을 발표했다. 검사 항목을 기존의 12개에서 비만·근력운동 적합성·수면시간 등이 추가된 57개로 늘리되 유전자 검사 품질관리를 위한 인증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질병 유전자검사를 임시허용한 산자부의 특례사업와 달리, 복지부 시범사업에선 검사 항목은 늘었으나 질병 유전자는 전과 마찬가지로 제외됐다.

두 부처의 서로 다른 사업에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테라젠이텍스, 디엔에이링크, 메디젠휴먼케어 등 유전체기업들은 검사 항목이 충분히 확대되지 않았다며 복지부 시범사업에 불참하겠다고 밝히고 산자부의 특례사업에 참여 신청서를 냈다. 산자부의 특례사업에 대해선 질병 유전자검사의 상업화와 오남용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료계와 시민단체들에서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질병검사는 해석 신중해야

과연 내가 위암에 걸릴 유전적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는 실험실에서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그런 검사 결과는 얼마나 확실한 예측일까, 나의 건강관리에 어떤 도움이 될까?

유전자검사는 의뢰자의 침에서 시작한다. 의뢰자가 침을 검사키트에 뱉어 기업에 보내면, 유전체 분석 장비와 인력을 갖춘 기업의 실험실에서는 침 속의 구강점막세포에서 유전물질을 뽑아 분석장비에서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읽어낸다. 보통의 유전자검사 서비스에서는 디엔에이를 구성하는 4가지 염기(A, T, G, C)의 30억쌍 서열을 다 읽지는 않고 질병과 관련이 깊다고 보고된 유전자들의 변이 정보를 주로 해독한다. 유전자에 나타나는 단 하나의 염기 변이를 ‘단일염기 다형성’(SNP)이라 부르는데 이런 단일염기 변이들이 유전자의 염기서열(작은 유전자는 수천개, 큰 유전자는 수백만개 염기로 이뤄진다)에서 어느 지점에 얼마나 있는지가 주된 검사 대상이 된다. 변이들 중엔 질병에 관여하는 것도 있고, 그저 개인차를 보여주는 것도 있고, 아직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이 때문에 유전자 변이를 살펴 질병 위험을 평가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경아 연세대 의대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교실)는 “단일 유전자가 질병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질병에선 여러 유전자에 있는 많은 변이들이 영향을 끼치기에, 검사 대상이 된 유전자의 변이들이 질병에 얼마나 관여할지를 해석하는 일은 복잡한 단계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검사가 이뤄졌다 해도 그 결과가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질병마다 유전자검사 결과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아 교수는 “어떤 질병에선 유전적 요인의 영향이 50%나 되지만 어떤 질병에선 5%이기도 한다”면서 “예컨대 유방암은 유전적 요인이 25~60%라고 흔히 말하는데,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요인이 함께 작용할 때 그렇다는 의미이고 또한 환경·생활습관·비만 같은 요인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암에선 바이러스 감염이나 과음 등의 영향이 중요하고 위암의 발병에는 식습관 등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예측된 질병 위험과 실제 질병의 관계가 확정적이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컨대 ‘어떤 질병의 미래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1.5배가량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검사 대상자의 생애 중에 그 질병에 반드시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전자 검사는 미래 질병의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지만 질병이 반드시 나타난다거나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다. 검사 대상에서 빠져 있지만 질병을 일으키거나 막는 유전자들이 더 많이 있을 수 있고, 주변 환경·생활습관·운동 여부·과거 질병 등이 실제 발병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유전체기업들도 유전자검사가 질병 ‘진단’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유전체기업협의회의 신현호 차장은 “진단과 처방은 당연히 의사가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중소 규모 병원의 유전자 검사를 사실상 대행해온 유전체기업도 맞춤형 건강관리에 도움을 주는 유전자 검사 정보를 제공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한겨레

디티시 유전자 검사 서비스의 선례로 자주 거론되는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에선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GP) 사업 이후 2000년대에 많은 유전자검사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안정적인 규제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미국 규제의 특징은 검사 항목을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검사기업의 기술, 인력, 장비 등을 심사해 인증을 해주는 제도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마크로젠의 이숙진 부문장은 “미국에선 기업이 먼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실험실표준인증’(CLIA, 클리아)을 받아야 하고, 이런 인증을 받은 기업이 특정 유전자와 질병의 관련성을 입증해주는 근거 자료를 갖추어 검사 항목별로 서비스 승인을 신청하면 식품의약국이 심사를 거쳐 승인해준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유전체기업인 ‘23앤드미’(23andME)는 의료기관이 아니면서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업으로 승인받아 활동하고 있다. 이 기업은 현재 유방암 위험 유전자인 브라카1(BRCA1), 브라카2(BRCA2)에 나타나는 많은 변이 중에서 지정된 3개 변이, 그리고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12개 질병의 관련 유전자에 한해 검사 서비스를 한다. 김종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는 “브라카 유전자들에는 수천개 변이들이 나타나지만 23앤드미의 검사 항목은 3개 변이로 제한될 정도로 미국 당국의 유전자 검사 심사와 규제는 엄격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유전자검사의 장점과 단점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정부 기관과 소비자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예컨대 미국립보건원(NIH)이 낸 <디티시 유전자검사 안내서>를 보면, 질병 유전자의 검사 결과가 곧 미래에 어떤 질병에 걸릴지 아닐지를 확실하게 예측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안내서는 암과 관련해 이런 도움말을 제공한다. “디티시 유전자 검사가 당신의 건강 위험을 평가해줄 수는 있지만 당신이 암에 걸릴지 아닐지에 대해 확실하게 얘기해줄 수는 없다. 젠더, 나이, 식습관, 운동, 인종, 과거 암 병력, 호르몬과 생식 요인, 가족사 같은 여러 요인도 개인의 전반적인 암 발병 위험에 관여한다.” 이 안내서는 “유전자 검사가 건강과 질병 위험이나 다른 체질 특성에 관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장점을 전하면서도 “질병 치료와 예방과 관련해 당신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근거로 삼는 유전자 검사가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것일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불필요한 염려와 걱정이 생긴다면 유전자 검사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건강관리의 참조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때에 그 쓰임새를 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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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와 규제는

디티시 질병 유전자검사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지, 검사 결과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적절한지는 현재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시행하는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질병 유전자 검사는 유전적 건강 위험을 평가해주지만, 오남용될 때엔 의료와 건강 정보에 혼란을 일으키는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자부의 ‘규제 샌드박스’ 정책으로 기존 법과 제도를 건너뛰고 시행되는 질병 유전자검사 서비스는 국내에서 여러 우려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계에서는 현재로선 신뢰도가 떨어지는 유전적인 질병 위험 평가가 의료기관과 소비자에게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종원 교수는 “같은 질병 유전자라 하더라도 한국인에서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곤 하는데, 아직 한국인의 유전자 특성에 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검사를 통해 질병 위험을 평가한다는 것은 섣부른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전체기업들에선 유전자검사가 진단용이 아니라 건강관리 정보 수준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테라젠이텍스의 홍경원 유전체서비스개발팀장은 “희귀 질병을 빼고 위암·대장암·폐암처럼 사례가 많은 질병에서는 한국인의 질병 유전자 연구도 꽤 이뤄져있기 때문에, 현재 수준에서도 질병 위험을 평가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유전자검사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전적 위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줄 ‘유전학 상담전문가’ 인력 체제가 유전자검사 서비스에 앞서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미국 등에서는 검사기업 인증제도와 더불어 검사 과정을 돕는 유전자 전문상담가 제도가 유전자검사 결과의 오남용을 막는 중요한 기반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의뢰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재천 운영위원은 “질병 정보, 유전자 정보를 보호할 국내 규제가 취약한데도 질병 관련 유전자검사를 샌드박스라는 이름으로 임시허용 하는 것은 자칫 유전 정보가 시장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의 배재범 생명윤리정책과 사무관은 “산자부의 질병 유전자검사 특례사업과 복지부의 인증제 도입 시범사업은 성격이 달라 각자 효과와 문제점을 평가한 뒤 법과 제도 개선안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산자부 사업의 평가가 어떻게 나오건 모든 유전자검사 서비스는 인증을 받아야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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