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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중국=세계 하청 공장’ 공식이 틀린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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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설비, 부실 덩이 중국 철강산업

인공위성 동원해 구조조정 감시

광산, 물류, 소비자 잇는 생태계

연 3억t 인터넷 플랫폼에서 거래

인니, 필리핀 등 생산 공장 건설

국가-기업 손잡고 ‘게임 체인저’

[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철강산업의 변신
철강 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이다. 한 나라의 산업구조가 얼마나 건강한 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중국도 다르지 않다. 전형적인 국유 산업인 제철은 생산 과잉, 시설 노후화, 덤핑 수출, 비효율을 상징했다. 그런 중국 철강 산업에 요즘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스마트 제조’가 핵심이다. 중국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이 철강산업에까지 퍼지고 있다. 변화하고 있는 중국 제철 공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처음 울린 곳이 바로 철강 산업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3월 중국산 철강재에 25%의 관세 부과로 포문을 열었다. 중국 철강업체의 미국 판매 법인 대표들을 스파이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과잉생산, 이에 따른 밀어내기식 수출이 문제였다. 지난 2015년 중국의 철강 수출량은 1억2000만t이나 됐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두 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수출 물량은 전세계로 넘쳐났다. 미국은 즉각 중국산에 522%의 폭탄 관세를 부과하며 시장방어에 나섰다. 2016년 열린 미중경제전략대화는 물론 G20 회의 테이블까지 중국의 철강 과잉 문제를 올려놓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철강 과잉 생산은 결국 무역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내우외환에 처한 중국 철강 산업. 여기가 끝인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지금 철강 산업 업그레이드 작업에 한껏 속도를 내고 있다. 시진핑 시기 중국 산업 정책의 두 축인 ‘공급측 개혁’과 ‘중국제조 2025’의 주요 타깃이 바로 철강이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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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뚜렷하다. 우선 과감한 구조조정 덕택에 과잉 생산 문제가 해소되고 있다. 대대적인 설비 폐쇄로 지난 2년간 총 3억t의 생산 설비가 폐기됐다. 환경, 안전 기준에 미달했거나 정식인가를 받지 않은 설비에 철퇴가 내려졌다. 정부가 까맣게 몰랐던 1억4000만t의 ‘그림자 설비’를 적발하기도 했다. 설비가 재가동되는 꼼수를 막기 위해 인공위성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철강 설비 능력은 13억t에서 이제 10억t으로 줄어 들었다. 1억t을 훌쩍 넘던 수출도 7000만t까지 떨어졌다. 상시적인 중국 발 공급과잉과 저가 경쟁의 고리가 끊기면서 한국 철강업계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설비 능력의 ‘치환’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지금 10억t에 달하는 설비 중 약 30%를 최신 설비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규 설비가 완공되는 2020년쯤 엄격한 환경기준에 맞는 신예 설비가 전체 생산의 30%를 차지하게 된다. 신규 설비는 모두 이산화황 배출기준을 35㎎/㎥ 이하로 맞춰야 한다. 2012년 최대 600㎎/㎥까지 허용됐던 것에 비하면 극적인 수치이다. 더 이상 낡고 조악한 철강 공장을 떠올리면 안되게 됐다. 그야말로 말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모양새다.

둘째 4차 산업혁명 기술과의 결합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스마트 팩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중국은 좀 다르다. 해마다 산업별로 대표 시범 사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한 뒤 업계 전체에 전파하는 방식이다. 지난해까지 3년째 국가급으로 선정된 프로젝트는 총 205개이다. 지방정부 역시 별도의 지역 사업을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전역이 스마트 제조 실험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오산(寶山)강철과 우한(武漢)강철이 합쳐져 출범한 중국의 대표 철강사 바오우(寶武) 스틸을 보자. 이 회사는 지금 ‘중국철강 스마트제조 4.0’ 모델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말 기본 개발을 끝냈고 올 하반기 보급에 나설 계획이다. 생산 공정의 스마트 팩토리뿐만 아니라 구매와 판매의 전 과정이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는 모델이다. 고객의 구매 정보가 자동으로 현장에 연결돼 원가와 납기를 고려한 최적 생산이 가능하다. 국가급 스마트 제조 프로젝트는 자동차, 가전, 부품 등 철강을 사용하는 산업에서도 40여 개가 선정돼 진행되고 있다. 바오우스틸의 스마트 제조는 지난해부터 창안(長安)자동차, 닛산둥펑자동차 등의 스마트 시스템과 연결되고 있다. 철강을 중심으로 제조업 전반에 ‘스마트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유통 분야 디지털 혁신 역시 놀랍다. 지난해 철강 전자상거래 물량은 3억t을 훌쩍 뛰어넘었다. 단순 인터넷 주문거래 서비스가 아니다. 전자상거래에 수반되는 금융, 물류, 창고, 가공은 물론 기술까지 서비스로 제공한다(그래픽 참조). 거래에서 파생되는 가공할 만한 빅데이터를 축적해 이를 고객별 맞춤 서비스 제공에 사용한다.

셋째 글로벌 생산 체계 구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해외 진출은 현지에서 철강을 자르거나 가공해서 파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인도네시아에 300만t급 공장 2개(칭산강철)를 건설하고, 필리핀에 800만t급 제철소 1곳(허베이강철)도 추진하는 등 동남아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현지 공장을 인수 후 설비를 확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동남아 철강 수입시장의 60%를 차지하던 중국이 한 발 더 나가 현지 생산 체제 구축에 나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십자포화를 견디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는 중국 철강업은 스마트 제조의 패러다임을 주도할 태세다. 연간 150조원에 육박하는 물량이 전자상거래로 이루어지고, 철근만 하루 300억원 이상이 선물로 거래되고 있다. 육중한 철강재가 금융 상품으로 재탄생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 철강업계에 등장했던 후발 주자가 양적 성장에 이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국내 업체가 느끼는 긴장감은 남다르다. 40%를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철강업계에 중국의 내부 혁신 및 글로벌 투자 확대는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생태계 혁신을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돼 추진한다는 점에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철강 산업 경쟁이 가장 치열한 나라다. 그런 중국은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전환기에는 치밀한 정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기업과 산업의 원활한 구조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WTO 규정 상, 정부가 나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 안이하게 들리는 이유다. 선진국에서 조차 기업들의 자율적인 연합과 공동 연구, 투자 활동의 뒤에는 정부의 정책 조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 철강 산업의 변신은 우리 정부와 기업에게 발상의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심상형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포스코경영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중국 경제와 산업, 기업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상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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