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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낙태죄, 그 너머를 이야기하다 ①]모두의 성(性)과 재생산 정치를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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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낙태의 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합헌 결정을 이후 7년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임신중지(낙태)의 비범죄화 결정이 각국에서 연이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 또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끝은 아닙니다. 이제는 처벌로서 책임을 전가해 온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우리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임신이나 임신중지의 상황을 강요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누구나 포괄적인 성교육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변화가 이어져야 할까요. <성과재생산포럼>이 주 1회 총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그 구체적인 방향을 제안합니다. 향이네에서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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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장의 사진

관련 행사나 기관 사진을 제외하면, 낙태죄를 다루는 기사에 삽입되는 이미지는 서너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신체 형성이 거의 끝난 태아 이미지(때로는 이미 태어난 영아의 이미지), 만삭인 임부의 이미지, 혹은 비탄에 잠긴 여성의 이미지. 낙태죄 존치에 무게를 두는 기사 뿐 아니라 폐지에 무게를 둔 기사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하는 이런 이미지들은 한국에서 임신중지가 어떻게 상상되고 있는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상상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식의 재현은 출산 직전인 태아나 갓 태어난 영아, 그리고 만삭인 임부의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임신중지를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태아” (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형법 제270조 제1항 위헌소원 판결문)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한다.

비탄에 잠긴 여성의 이미지는 또한 임신중지를 반드시 죄책감과 결부되어야 하는 사건으로 묘사한다. 남성의 이미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런 구도 속에서 저 폭력과 죄책감은 온전히 여성의 것으로 남는다. 장애 여부, 연령, 체형, 젠더 표현 등에서 소위 정상성의 범위에 포섭될만한 신체들만이 지면에 오른다는 점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에서부터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입니다”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임신출산의 영역에 개입해 왔지만, 그 이면에서 임신출산은 늘 사적인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규정되어 왔다. 자율적인 가족계획을 위한 성교육에서부터 출산 이후의 양육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자원들까지 모두가 가족 내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방치되어 왔고, 가족 내에서 그 부담은 다시 한 번 여성에게로 전가되어 왔다.

반대편에서 (남성과) 국가의 역할은 이 사적인 문제가 공적인 영역으로 흘러넘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임신 혹은 임신중지를 해야 할 때와 하면 안 될 때를 결정하는 권력을 독점하며 이들은 윤리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사익”으로 규정하고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대비시킴으로써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하는 것을 임부 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공익’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삶을 통제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보호하는 생명이란 아주 엄격하게 선별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의 삶은 물론이고 모자보건법에 명시된 “유전학적” 혹은 “우생학적” 사유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되는 삶이 배제되며, 그나마의 법적 근거조차 없이 인구정책에 따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양적, 질적으로) 적절한 인구의 범위를 벗어나는 삶들이 또한 삭제되어 왔다.

한편으로는 여성에게 ‘국가 발전’에 필요한 재생산을 할 것을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장애여부, 경제적 상황, 혼인 상태 등을 이유로 낙태를 강요해 온 제도적, 문화적 기제들이 얽혀 있음을 생각하면,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그저 “태아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것, 혹은 소위 ‘생명 윤리’라는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를 위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낙인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낙태죄 폐지, ‘여성’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

이제는 가족계획요원이 집집마다 찾아와 임신중절이나 영구피임장치 삽입을 요구하지는 않으며 국가주도의 “단종 수술”이 행해지지도 않으므로, 지금의 출산장려정책은 말 그대로 ‘장려’ 이상을 하지는 않는 듯 보이므로,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피임 방법들이 알려져 있으므로, 어쩌면 국가가 나서서 개개인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한다는 말은 과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형법의 낙태죄 조항과 모자보건법의 임신임신중절 허용 조항의 곁에서, 많은 제도적·문화적 장치들이 여전히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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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특히 장애여성이나 청소년 등이 주변인으로부터 임신중절이나 피임 장치 삽입을 강요받는 사례나 반대로 피임 없는 성관계를 강요받는 사례는 꾸준히 보고되고 있지만, 국가는 이런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다. 생식 능력 제거를 법적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규정함으로써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부정한다.

어떤 피임 방법들이 있는지, 여러 상황 속에서 어떤 식의 권력 관계가 문제 되는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성교육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임은 의료보험 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다. 난임시술비는 법적 혼인 상태의 부부만이 지원받을 수 있다. 양육 지원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 한부모 가정이나 이주민이 포함되 가정의 출산은 종종 비난받기까지 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누가 아이를 낳을 자격, 태어날 자격을 갖는지,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행해져야 하는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거나 출산 후 양육을 하는 등의 여러 일들이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지를 국가가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코 사적인 문제일 수 없으며 수많은 정치적 권력들이 교차하는 영역인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의 문제를 여전히 가족과 여성에게 떠넘겨 둔 채 임신중지를 처벌할 권리만큼은 놓지 않고 있는 국가의 모습은, 적극적인 가족계획을 통해 개개인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위계화 함으로써 통치의 편의를 추구해 온 과거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바로 이것이 낙태죄 폐지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형법 제 27장 “낙태의 죄”는 자기낙태를 다루는 제 269조와 의사 등의 낙태 및 부동의낙태를 다루는 제 270조, 단 두 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지만 (허용 사유를 명시하고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모자보건법 제 14조, 모자보건법에 근거를 둔 난임부부 지원사업, 이성 부부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가족관계등록법, 성별 정정을 위해서는 생식 능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규정한 대법원 예규, 성교육 관련 조항을 담고 있는 몇 개의 법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개개인의 섹슈얼리티를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어쩌면 정확히는,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따라서 단순히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중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낙태죄 폐지는 국가가 여성에게 국가·민족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그것을 거부할 때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법적으로 처벌하는 일을 중단시킨다.

여성의, 그리고 다른 모두의 섹슈얼리티를 각자에게 되돌려 주는 긴 여정의 출발점일 뿐이다.

어떤 권리란 각자가 그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데에서 더 나아가 문화적, 경제적 장벽 또한 허물어야 하며 그것은 종종 반대편에서의 제도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특정한 성적 실천을 금지하는 제도인 낙태죄를 폐지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특정한 성적 실천만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다른 여러 제도와 문화들을 또한 뜯어 고침으로써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장애, 연령, 성적 지향, 젠더 표현, 혼인 상태, 국적, 인종, 경제적 상황 등 다양한 지점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 볼 것을 요구한다.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는, 그리고 실은 (종종 단일한 것으로 상상되는) 여성의 성과 재생권 권리 또한,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떤 것을 상상하고 욕망할 수 있는지, 정보, 접근성, 경제력, 협상력 등의 차원에서 어떤 자원을 갖고서 어느 정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등 수많은 문제들을 따지고 고민함으로써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읽고 상상하자

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할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위탁해 지난해에 실시하고 지난달에 발표한 임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는 무려 7년 만에 나온 것이었다. 그나마도 2017년 말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응답으로 정부에서 황급히 계획한 것인 점을 생각하면, 임신중지를 죄로 규정하고 동시에 사적 문제로 치부함으로써 아주 기초적인 정보마저도 차단되어 왔음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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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낙태죄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마저 몰랐던 현실 속에서 비공식적인 경험담은 (쉬쉬 하는 가운데에서라도) 적지 않게 유통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여성단체들이 단행본이나 웹진 등의 형태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왔다. 또한 지금까지도, 어떻게든 당사자를 섭외해 인터뷰 기사를 싣는 언론들이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구체적인 증언이나 통계 자료의 부족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또한 따져 보아야 한다. 이해하기 쉽고 자극적인 이야기만이 쉽게 유통되고 오래 기억되므로 많은 경우 이야기들은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이미지와 다를 것 없는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선별된다. 강간으로 인한 것이어서, 미성년이거나 결혼하지 않는 상태여서, 혹은 가난하거나 병들었거나 장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 그래서 이후로도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연들, 혹은 반대로 문란한 생활의 결과로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다 결국 병을 얻고 삶이 무너지는 천벌을 받았다는 사연들, 이런 이야기들만이 남는 것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들을 읽고 상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개인의 무책임함과 아픔의 이면에 어떤 사회적 역동들이 있어 왔고 여전히 있는지를 재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왜 피임법을 알지 못했는지, 알고 있는 피임법을 왜 실천하지 못했는지,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어리지도 않은데 왜 임신출산을 원하지 않았는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왜 죄책감을 갖게 되었는지, 혹은 반대로 어떻게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되었는지, 이런 사정들에 그의 여러 가지 사회적 위치들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하나하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하나의 사연, 혹은 다양한 사연들을 상상하는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성과 재생산의 정치를 상상하는 일이다. 성과 재생산을 사적인 문제로, 혹은 몇 가지 제약만 없애면 자연히 실현될 추상적인 권리로 상상하는 대신 수많은 권력들이 교차하는 정치의 장으로 상상해 내는 일 말이다

이러한 상상을 위해서는 임신출산을 여성의 윤리적, 사회적 책무로 규정하는, 또한 특정한 섹슈얼리티만을 ‘바르고 건강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나 관념들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낡은 틀에서 벗어나 낙태죄 폐지 이후를 ― 의료, 교육, 사회경제적 지위 등 다양한 층위에서 성별, 연령, 장애여부, 국적, 인종 등 다양한 권력 축들이 교차하는 ‘정치로서의 성과 재생산’을 ― 상상하는 가운데 비로소 우리는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그것에서 떼어낼 수 없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박종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진보 언론 기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글로컬페미니즘학교 상근 활동가로 일했다. 현재는 성과재생산포럼,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등에서 활동가·연구자들과 교류하는 한편,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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