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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합법적 과로 장려” vs “협소한 주제 확대해석” 탄력근로 둘러싼 사제간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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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서울대 공동행동 모교 이철수 교수 비판

세계일보

서울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138명이 모인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공동행동)은 11일 성명을 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철수 교수(노동법)를 비판했다. 과거 논문을 통해 탄력근로제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이 교수가 되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합의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 교수는 앞서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탄력근로제보다 노동자의 과로를 정의한 ‘의무휴식제’ 도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탄력근로제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예외적인 제도”라며 사회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탄련근로제 합법적 과로 장려” vs “의무휴식제에 더 큰 의미”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 “교수님께서 어떤 권력을 좇고 계시기에 손바닥 뒤집듯 스스로의 주장을 뒤집는 것인지, 학자로서의 양심은 어디로 갔는지 여쭙고 싶은 심정”이라며 “장시간 노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합법적으로 과로를 장려하겠다는 것은 노동법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이 교수를 정면 비판했다. 19년 전 연구논문을 통해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와 장시간 근로를 비판하던 이 교수가 돌연 자신의 주장을 뒤집어 경사노위 합의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행동은 이어 “주 52시간제와 상관없이 최대 주 64시간까지 (사업자가)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된다”며 “고용노동부는 12주간 평균 60시간 노동을 만성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 인정기준으로 고시하고 있는데 이번 경사노위 합의에 따르면 24주간 연속 주 64시간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된다”고 반발했다.

세계일보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철수 교수(노동법). 연합뉴스


반면 이 교수는 지난 7일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장시간 근로에 대해 보완책으로 제시한 ‘의무휴식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경사노위가 발표한 지난달 합의안에는 탄력근로 단위기간이 3개월을 초과한 사업장은 근로자에게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 연속 11시간의 휴식을 줘야한다는 ‘의무휴식제’ 내용이 담겼는데 ‘장시간 근로’에 대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사정 합의 내용은 의무휴식제 또는 서면 합의 시 예외가 아니라 의무휴식제를 시행하되 불가피한 경우 서면합의로 예외를 두자는 개념”이라며 “1주 최대 64시간이라는 것은 노사가 탄력근로 도입에 서면으로 합의하고, 근로자가 연장근로에 개별적으로 동의해야 가능하다. 노사합의로 12시간 의무휴식제를 도입하든지 해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탄력근로제는 사용자 위한 합의” vs “근로자대표제 정착해야”

공동행동은 “교수가 주도한 경사노위의 이번 합의는 ‘사회적 합의’가 아닌 ‘사용자들을 위한 합의’이자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합의”라며 이 교수가 권력을 좇아 사용자편을 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없거나 약한 사업장에서 ‘근로자대표’는 친 사측이거나 유명무실해 유령 같은 존재라는 점을 교수님도 모르시지 않을 것”이라며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90%의 노동자들은 이번 합의로 사용자의 일방적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반발했다.

반면 이 교수는 근로자대표제는 노동계가 풀어야할 ‘숙제’라는 입장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제도는 외환위기 때 도입된 것으로 노조가 없는 곳이 있다면 그들의 힘을 키워줘야 하는 쪽으로 논의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협의 없이 또는 근로자대표 의견을 무시하고 근로시간을 변경한다면 근로자대표가 다음에 탄력근로 도입에 합의해 줄 리 없다”며 “(노조가 없거나 약한 곳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노조)자기들의 역할이 필요한데, 서면합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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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확대…사실상 1년 허용과 다름없어” vs “예외적인 상황 위한 제도”

탄력근로제 확대가 미치는 사회전반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도 양 측은 이견을 드러냈다. 공동행동은 이 교수의 과거 논문을 들어 “(탄력근로) 6개월의 허용만으로 계절적 사업 등에 있어서는 사실상 1년 단위를 허용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앞서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프랑스는 1주 평균 노동시간이 38~37.5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로 제한하고 있고 국제노동기구(ILO)협약에서도 주40시간 노동제를 표준으로 권고하는데, 우리나라는 탄력근로에 따라 1주 최대 64시간 노동할 수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이 교수는 “탄력적 근로제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매우 예외적인 제도”라며 “특정시점에 많은 시간을 배정하고 다른 기간에 상응하는 적은 시간을 배정해 조직관리를 할 수 있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에서 논의한 탄력근로 문제는 협소한 주제인데 판을 너무 키웠다”고 설명했다.

경사노위는 11일 3차 본위원회를 열어 탄력근로제 합의에 대한 최종의결을 예정했으나,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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