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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소송 가입시더" 포항에 줄소송 움직임 "포항·경주 시민 76만명 소송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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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포항 지진 인근 지열발전소 때문"
정부 발표 이후 손해배상 소송 문의 ‘폭주’
주민들 "모두들 소송 준비하자는 분위기"
소송금액 최대 7조원, 배상까진 3~4년 걸릴 듯

"인재(人災)랍니더. 소송 가입시더."

22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덕산동에 있는 한 건물 입구에는 시민들이 줄지어 수십미터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에서 시민들의 지진 피해 소송을 대리 접수하는 창구에 시민들이 몰려든 것이다. 대책본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포항 북구 주민 박명동(58)씨는 이날 디지털편집국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포항 지진이 인재라고 공식 발표를 했다 아입니꺼. 당연히 힘이 생기지예. 포항 사람들 사이에선 ‘이 마당에 결과가 좋게 안 나겠나’ 이래 생각하고 있습니더."

경북 포항이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일 ‘포항 지진’이 ‘인재’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부터다. 그간 지진을 자연재해로만 보고 피해 보상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민들은 지진의 원인이 지열(地熱) 발전소 때문이라는 정부 발표를 보면서 너도나도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다. 피해가 컸던 포항과 경주지역 시민들이 모두 소송에 참여할 경우 소송 금액은 7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한 ‘포항지진정부조사연구단’은 지난 20일 2017년 11월 포항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 ‘자연 지진’이 아니라는 결과를 내놨다. 연구단은 이날 "인근 포항 지열발전소에서 땅 속으로 하루 최대 900t의 물을 계속 주입하자, 수압을 견디지 못한 단층이 어긋나면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포항 지진은 한반도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강진이었다.

지진 발생 이후 학계와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진 발원지 인근에 있는 지열발전소 때문에 지진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뾰족한 증거가 없어 의혹에만 머물러 있었다.

정부 발표가 있은 직후 포항·경주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해볼 만한 소송’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포항 북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현옥(56)씨는 "TV뉴스를 보자마자 이웃들과 함께 모여 대책을 상의했다"며 "전날(21일) 소송인단으로 등록을 마친 상태"고 했다. 그는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와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포항 북구에 사는 백승엽(30)씨는 "정부 발표 후에 주민들이 ‘이제는 진짜로 해도 되겠다’며 소송을 준비하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소송 규모는 소위 ‘역대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진이 발생한 2017년 11월 당시 포항 시민 전체 51만명과, 마찬가지로 피해가 컸던 경주 시민 25만명이 모두 소송에 참여하게 되면 소송인단은 76만여명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부터 포항 지진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대행해 온 법무법인 서울센트럴 홈페이지는 이날 접속자가 폭주해 낮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지열발전소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시작됐다. 작년 11월 1차 소송 때는 71명, 올 1월 2차 소송에는 1156명이 각각 참여했다. 이 때만 해도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어서 ‘피해가 인정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현재 포항 주민들은 포항 지진 범시민대책본부를 꾸려 3차 소송인단을 모집 중이다. 정부 발표 이튿날인 지난 21일 하루에만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 의사를 새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경북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소송금액도 거액이 될 전망이다. 지진 피해에 따른 하루 위자료를 1인당 5000원으로 잡고, 지진이 발생한 지난해 2017년 11월 15일로부터 5년을 산정해 포항 인구 51만명과 경주 25만명을 곱하면 소송금액은 총 6조9350억원에 달한다.

다만 시민들의 민사 소송이 항소심까지 갈 경우 배상까지 3~4년이 걸릴 전망이다. 이때문에 지역 정치인 등은 특별법을 도입해 소송보다 빨리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21일 자유한국당 소속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포항지진특별법 제정과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지진특별법은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피해구제와 생활 및 심리안정 지원이 골자다. 또 지열발전사업 전반을 조사해 정부 과실 및 책임 규명에 나서기 위해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을 개정하겠다는 취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공식 집계한 포항지역 피해액은 546억원,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발표한 직·간접 피해액은 3323억원이다. 포항 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난 21일 "(지열발전소 등) 관련자들을 업무상 중과실치상 또는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 논의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백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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