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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취소 대통령이 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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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전교조 ‘법외노조’ 언제까지

박근혜 정부 부당한 행정처분에

전교조 5년반 동안 법외노조 신세

“정부가 직권 취소” 잇딴 권고에도

보수세력 반발 우려해 해결 외면

판결·법 개정 통한 해결 선호하나

야당 태도 미뤄 법 개정 쉽지 않아

사법농단 연루된 재판도 시간 걸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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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오는 5월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가 씌운 ‘법외노조’의 굴레를 아직도 못 벗고 있다. 국제 기준이나 법 해석상 법외노조 통보 조처가 부당하기에 정부가 직권으로 잘못된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권고, 요구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다. 보수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정부가 이를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0일 낮 청와대 정문 분수대 앞 광장.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찍기 바쁜 관광객들 한 켠에서 해직교사 두 명이 “대통령은 약속을 지켜라” “전교조 법외노조 즉각 취소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권정오)은 지난 14일부터 매일 점심시간에 맞춰 청와대 앞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해직교사 33명이 두명씩 번갈아가면서 피켓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도 전교조의 1인시위가 지난달 27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해직상태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는 촛불시위의 10대 요구였으니 문재인 정부가 출범(2017년 5월10일)하면 바로 풀릴 줄 알았다. 지금 새 정부가 들어선 지가 두달 뒤면 벌써 만 3년째가 되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영신간호비즈니스고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김용섭 전 교사가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전교조 법외노조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여러차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점점 답답하게 느껴지더니 지금은 실망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다. 촛불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김 전 교사 옆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최창식 전 교사(고양일고·중국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17년 2월 전교조 당시 조창익 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새로운 정부가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사람은 법외노조인 전교조에서 상근으로 일한다는 이유로 2016년 1월 직권면직(해직)됐다. 서울고등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본안 소송(2016년 1월21일)에서 박근혜 정부 손을 들어준 직후였다. 당시 해직자 34명(이후 한 명은 정년)은 3년이 넘도록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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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전교조 탄압’에 발맞춘 대법원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10월24일 고용노동부(당시 장관 방하남)가 전교조에 팩스로 보낸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 공문으로 시작됐다. 전교조 6만명의 조합원 가운데 해고자 9명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해고자 조합원 문제는 전임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부터 불거졌다. 비근로자를 조합원으로 둘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하는 경우 법외노조로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을 근거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전교조 등 진보세력 때리기의 일환이었다. 원세훈씨가 2009년 국정원장에 취임한 뒤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전교조 등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게 더 어렵다”면서 “여러분이 앞장서 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국정원 기록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전교조를 차마 법외노조로 만들지는 못했다. 국제기준이나 법 취지, 판례 등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먼저, ‘모든 사람의 자유롭고 차별없는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 권리’는 유엔 사회권규약,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에 명시돼 있다.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은 노동조합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지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게 국제기준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이와 관련해 여러 차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을 한국 정부에 촉구해왔다. 또, 조합원 자격을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한 시행령 규정은 노동자 권리를 확대하면서 노조 해산명령을 삭제한 노조법 개정(1987년)의 취지에 어긋난다. 전교조 같은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초기업단위 노조)에는 일시적인 실업자나 구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2004년 대법원 판례(2001두 8568)도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박근혜 정부는 밀어부쳤다. 국가인권위원회(당시 위원장 현병철)가 “조합원 자격 때문에 노동조합 자격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전교조 규약을 시정하라고 요구한 근거로 제시한 조항은 인권위가 이미 2010년 결정을 통해 삭제를 권고한 제도”라고 제동을 걸었지만(2013년 10월22일), 박근혜 정부는 이틀 뒤 팩스 통보를 강행했다.

박근혜 정부의 막무가내식 행정 처분은 법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바로잡히기는커녕 양승태 대법원에 의해 오히려 사법거래의 대상이 됐다. 법원행정처는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와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정지 신청’ 소송을 상고법원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갔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밝혀낸 행정처의 대외비 문건(2014년 12월3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이 대표적이다. 이 문건은 “(효력정지 신청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대법원이) 인용 결정하면 양측(청와대와 대법원)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 “(효력정지) 재항고 사건의 처리 결과가 (처분 취소 2심 소송에) 간접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임”이라고 적고 있고, 그 뒤 대법원의 효력정지 결정과 고법의 취소소송 2심 선고 결과는 문건 내용대로 ‘전교조 패소, 고용노동부 승리’였다. 앞서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도 “승소 실효성 확보 위한 조치, 전임자 복귀, 사무실 회수” 등이라고 적힌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2014년 6월15일)에서 보듯 전교조 법외노조 굳히기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법외노조 해결은 과거 적폐청산
늦었지만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한겨레

‘국정교과서 폐기’ 직권 취소 전례 있어

박근혜 정부의 독단적인 행정 처분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의해 희생양이 된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내외에서 터져나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법외노조 통보 즉각 철회와 관련법 개정 등을 두차례(2017년 6월17일, 2018년 4월12일) 권고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당시 위원장 이성호)는 지난해 12월18일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며, 법외노조 통보는 국제인권 기준과 헌법의 단결권 보호 취지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또, 고용노동부 산하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도 지난해 7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정부가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을 폐지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이밖에도 교수 연구자 423명의 성명(2018년 8월16일)을 비롯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공동성명(2018년 8월23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 공익위원들의 권고(2018년 11월20일)도 잇따랐다. 이들의 권고나 요구는 조금씩 강조점이 다르지만, 대체로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여러 면에서 부당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이전에 내렸던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관계 법령도 고쳐 원천적으로 노동기본권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직권 취소 방식에 부정적이다. 지난해 6월 이런 태도가 분명해졌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교조와 만나 “법률 자문을 통해 직권 취소 여부를 검토한 후 청와대와 상의해 처리하겠다”고 직권 취소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2018년 6월19일) 다음날 청와대는 김의겸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권 취소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안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아봐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대해 전교조 집행부가 삭발과 농성, 단식 등으로 연말까지 거세게 투쟁했지만, 청와대는 지금까지도 요지부동이다.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2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교조 법외문제에 대해 우리도 고민이 깊다”면서도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계기로 노동조합법 등을 국회에서 개정해서 자연스럽게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도 지난주 <한겨레>의 인터뷰(3월13일치)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국제노동기구 비준 문제를 풀어야 전교조 문제도 풀린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직권 취소를 통한 법외노조 해결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청와대의 구상이나 판단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전교조 해고자의 원직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송재혁 전 대변인은 “경사노위가 사실상 파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설령 국제노동기구 협약에 대한 합의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법 개정에 쉽게 응해줄 리가 없다.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이 사법농단의 대표적 사례였던 만큼 대법원 판결도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며 “이전 행정부의 잘못된 처분을 정부가 직권으로 취소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그는 “현 정부 들어서도 국정교과서 폐기나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조처 등이 행정부의 직권으로 이뤄졌다”며 “특히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문제는 전교조 법외노조처럼 재판에 계류 중이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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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뒤 전교조 30년 생일인데

청와대가 직권 취소 방식을 꺼려하는 것은 보수세력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이와 관련해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는 이념적인 시비가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청와대는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직권 취소를 하기보다는 법원 판결과 경사노위에서의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타결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에서는 출범 이후 전교조 법외문제 뿐만 아니라 야당과 보수세력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사안이나 개혁정책에 대해서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이후로 처리를 대거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쟁점이 될 만한 사안은 가급적 피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과거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적폐청산, 그리고 노동자 기본권을 보장하는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보면서 직권 취소를 꺼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며 “그렇게 지지율만 계산하고 지키려다가 이 정부가 출범 뒤 지금까지 이룬 게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권 위원장은 “전교조 30주년인 오는 5월까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결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결단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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