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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차이나 인사이트] 기울어진 운동장 과연 평평해지고 더 넓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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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자 기업 동등 대우 원칙 명시

강제 기술이전 금지, 지재권 강화

미국 요구 수용한 측면도 있지만

경제 돌파구 찾으려는 게 근본 목적

40년 만에 정비된 중국의 외국인투자법
중앙일보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에 만든 외국인투자 관련 법률을 40년만에 재정비하고 내외자 기업 동등 대우 등 을 명기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외상투자법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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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외상(外商)투자법이 지난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직전 통과되며 내외의 주목을 끌었다. 개혁개방 직후인 1979년 외국인투자에 관한 법을 제정한 지 40년 만의 대대적인 정비다. 신설 조항 가운데 외국 기업에 대한 강제기술 이전 금지 규정이 마련된 게 무역 전쟁으로 거세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언론 보도의 초점이 됐다. 하지만 외상투자법에는 그 밖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많다. 그동안 중국 시장은 외국 정부·기업으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자국 기업에 유리한 불공정 관행과 제도 때문이었다. 과연 40년만의 법·제도 정비로 운동장은 과연 평평해질 것인가. 그리고 우리 기업들에 요구되는 자세와 전략은 무엇일까.

외상투자법이 비상한 관심을 모은 이유는 중국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데다 산업정책이 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경제는 생산·무역·투자· 부동산 등 주요 지표들이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대를 걸었던 소비도 부진하다. 지난 수년간 경제보다 정치부문에 집중하면서 시장화 개혁이 활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고 그 와중에 ZTE 사태, 상호 보복관세 부과, ‘중국제조 2025’를 둘러싼 미·중 마찰 등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세계의 공장’ 중국을 찾는 외국인 투자가 더는 늘지 않고 이미 와 있던 기업들 중 일부가 해외로 떠나는 상황까지 겹쳤다. 하이테크 기술과 스마트 제조업, 서비스업을 육성하려면 외국기업과의 협력과 제휴가 필요한데 갈수록 많은 외국 기업들이 중국 내 투자환경에 대해 과거처럼 좋은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큰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대내외 상황은 중국이 한동안 잠재워두었던 외국인투자 관계법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외상투자법이 나온 배경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뜻이다.

총 6장 42조로 구성된 외상투자법은 2020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그 원칙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게 내외자 기업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대외 개방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국민 대우와 네거티브 리스트에 따른 관리 원칙을 확립했다. 리스트에 명시된 특정 분야를 빼고는 외국 기업에도 투자를 자유화하고 내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한다는 의미다. 정부 조달에서도 중국기업과 평등하게 적용한다는 규정도 들어갔다.

그동안 논란이 돼왔고 미국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기술이전 강요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지방정부가 외국인 투자기업에 약속한 계약과 지원 사항의 이행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외투기업에 대해 투자 전 단계에서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가 나중에 이를 지키지 않는 사례가 많았던 것을 바로 잡겠다는 의미다.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에 대한 조항도 명시됐다. 전반적으로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쪽으로 입법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리스크 요인도 있다. 외국 투자기업은 투자정보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명시됐다. 또 외국의 투자자가 중국에 차별적인 조치를 취하면 중국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한 부분도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견제와 통제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상투자법이 통과된 후 나온 반응은 중국과 해외에서 온도차가 있다. 중국은 대외 개방의 도정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전반적으로 외투기업의 권익을 크게 향상시켰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우려가 완화됨으로써 외자 유입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중·미 신(新)무역협정의 길을 텄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해외의 반응은 “두루뭉술하고 디테일이 없다”며 신중한 편이다. “미국을 의식해 성의를 보이긴 했지만 급하게 내놓아 빠진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로펌 윌머헤일의 레스터 로스 파트너 변호사는 “당초 마련했던 초안에 비해 내용이 모호하고 간단하다”는 논평을 했다. 주중 미국 상의와 EU 상의도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다. 필자가 접한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법에 담긴 원칙론보다는 시행이 중요하며 앞으로 나올 관련 세칙, 그리고 지방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인 이행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중국이 외상투자법을 내놓은 배경과 이유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일각의 분석대로 외국 정부의 항의와 요구, 특히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 이유의 전부일까. 그보다는 중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내적 필요성이야말로 근본적인 이유라고 본다. 그 핵심은 내수 확대와 개혁개방 심화다.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 전략에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특히 소비·무역·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은 경제적 필요성뿐 아니라 국제관계 측면에서도 불가피하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중 무역전쟁은 치열한 공방전이라기보다는, 미국을 상대로 한 방어전의 성격이 크다. 중국은 지금까지 많이 양보했다. 하지만 아직 양보하지 않은 분야, 이를테면 국가 운명을 걸고 펼치는 ‘중국제조 2025’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향은 두 가지다. ‘중국제조 2025’의 시기를 뒤로 더 늦추거나, 혹은 시장개방을 더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은 개방 쪽을 선호할 것이다. 굴곡이야 있겠지만 대세는 개방이다. 우리 기업들이 잘 관찰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 투자에 관한 인식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투자환경과 사업환경은 중국 진출의 수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의 경쟁력과 미래의 경쟁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변화하는 중국을 보는 자세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중국의 법과 제도에 대해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대폭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외상투자법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좋지 않은 부분을 숨기려고만 할까. 그렇지 않다. 이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창구가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이다. 최근 들어 CCTV의 영어 국제방송인 CGTN을 보면 자국에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 거시경제지표 하락세, 빈부 격차, 지방정부 부채문제 등을 사실대로 다루려는 모습이 보인다. 선입견과 과거의 경험으로만 보기보다는 달라지는 현재와 미래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노포비아’와 ‘시노파일’은 그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시노포비아(sinophobia)는 중국 혐오증 내지는 공포증이다. 중국 위협론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시노파일(sinophile)은 정반대다. 중국 비즈니스를 할 때 과도한 우려도 좋지 않지만 지나친 기대 또한 금물이다.

한 마리 제비가 봄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외국인투자관계법이 40년 만에 새 옷을 입었다지만 운동장이 정말 평평해질지는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 얼마나 잘 집행될 것인지, 후속 조치로 나올 각 부처의 규정과 지방정부의 조례 등이 어떤 형식과 내용을 담을지를 봐야 한다. 이와 무관하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 시장은 이 시간에도 더 넓어지고 더 새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8년 중국엔 호주만한 경제가 새롭게 하나 생겼다고 하지 않는가.

외상투자법의 주요 내용
▶ 지재권 보호 및 강제기술이전 금지, 지재권 침해시 법적 책임 추궁(제 22조)

▶ 지방정부가 외자기업과 체결한 약속 이행 책임 강화(제 25조)

▶ 외자기업의 금융거래 자율권 보장(제 21조)

▶ 5년 후 모든 외상투자기업에 대해 ‘회사법’(公司法) 적용(제 31조, 32조, 41조)

▶ 반독점법에 의거한 경영자집중 조사 명시(제 33조)

▶ 외자정보보고제도와 안전심사제도 확립(제 34조, 35조)

◆박한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으로 재직하며 중국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응전략을 연구 중이다. 중국 푸단대에서 기업관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방문학자,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10년 후, 중국』 『프레너미-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관계』(공저) 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박한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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