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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중거리 미사일 개발 경쟁 뛰어든 미국…표적은 북한?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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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이란 등 美 위협하는 개발국 견제 포석으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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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지난 25일(현지시간) 탄도미사일 요격용 발사체가 시험발사되고 있다. AP 통신


냉전 시절 군비 축소의 상징으로 꼽혀온 중거리핵전력 조약(INF)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INF에 부정적이던 미국이 지난달 1일(현지시간) INF 이행 중지를 선언한데 이어 올해 안에 지상발사 순항미사일과 사거리 3000~4000㎞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부터다.

INF 조약은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1988년 6월 발효됐다. 사거리 500~5500㎞인 지상 발사 미사일의 생산, 실험,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핵무기 경쟁을 억제하고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INF를 미국이 30여년만에 무력화하려는 것은 북한과 중국, 이란 등 미국을 위협하는 중거리 미사일 개발국가를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평가다.

◆30여년만에 개발 나선 美…타격, 요격 능력 강화

INF 이행을 중지한 미국은 30여년 동안 실전배치되지 않았던 지상발사 미사일 시험을 공언했다.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나 수천㎞를 날아가는 무기인 만큼 전략적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AP 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은 13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오는 8월 지상발사 순항미사일을 시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000㎞로 18개월 안에 배치될 전망이다. 미국은 1980년대 핵탄두를 탑재하는 사거리 2500㎞의 BGM-109G 트럭 탑재 지상발사 순항미사일을 운용했으나 INF가 체결되면서 1991년 퇴역시켰다.

미 국방부는 오는 11월 사거리 3000∼4000㎞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도 저울질하고 있다. 5년 동안 10억 달러(1조 1340억원)가 투입될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은 단거리, 중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이 증대되는 아시아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냉전 시절 사거리 740~1770㎞인 MGM-31 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을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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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의 에이태킴스 전술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지상발사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안보전문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미국은 5년간 12억 달러(1조 3600억원)를 투입해 지상발사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할 예정이다. 적군 후방에 위치한 전략시설을 단시간 내 타격, 적의 움직임을 마비시키려는 것이다. 2단 추진체로 구성된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2023~2024년쯤에는 비행 시험이 이뤄질 전망이다.

미 본토와 해외 주둔 미군을 보호할 요격 체계 개발도 지속되고 있다. 미 미사일방어국은 중국, 북한, 러시아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하와이를 지키기 위한 지상배치 요격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2023년 개발과 초기 전력화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또한 태평양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을 감시할 장거리 표적식별 레이더를 2026년까지 실전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미국 국내외 주요 지역을 대상으로 설치 장소를 물색하고 있으며, 장소가 정해지면 구체적인 요구성능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공동개발한 SM-3 블록2A 요격미사일의 성능시험도 진행될 예정이다. NHK에 따르면, 미국은 SM-3 블록2A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실험을 내년에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미국과 일본이 2006년부터 공동개발한 SM-3 블록2A는 이지스구축함에 탑재되는 해상 배치형 요격무기로 적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북한이 화성-14, 15 ICBM을 시험발사하는 등 ICBM 위협이 커졌고, 중거리 탄도미사일 요격 시험이 성공하면서 ICBM을 격추하는 성능시험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SM-3 블록2A는 요격 범위가 제한되어 있지만 미 본토에 대한 ICBM의 위협을 저지할 패트리엇(PAC-3)이나 사드(THAAD) 등 지상 배치 요격미사일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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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배치된 사드 요격미사일이 발사대를 하늘로 세운채 대기하고 있다. 성주=연합뉴스


◆중국, 북한 위협 정면대응…미사일 경쟁 심화 우려

미국은 INF 이행을 중단하고, 나아가 폐기 움직임까지 드러내는 표면적 이유는 러시아의 INF 위반이다. 러시아가 개발한 미사일이 INF가 금지하는 사거리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실제로 경계하는 것은 중국과 북한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이 INF에 발이 묶여있는 동안 중국과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며 아시아 태평양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수년 전부터 “미국과 러시아의 군비통제조약은 무의미하며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을 만드는 모든 나라들을 조약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의 탄도미사일은 ‘공세적 방어’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고 있다. 미국이 ICBM으로 핵공격을 하면 ICBM으로 반격하고,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핵추진항공모함 등의 접근을 저지한다는 것이다. 중국 탄도미사일 전력이 단거리, 중거리, ICBM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확대된 이유다. 중국은 사거리 1500~4000㎞ 사이인 DF-21D와 DF-26을 비롯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북중 국경지역부터 남중국해에 이르는 국경과 해안 일대에 배치, 미군의 서태평양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중국이 지상에서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한 대함탄도미사일(ASBM)은 사거리가 1700~4000㎞에 달하는데다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탑재된 채 표적 정보를 수신하는 즉시 발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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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역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인 2017년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주일미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북극성-2형 준중거리 탄도미사일과 스커드 개량형 등도 운용중이다.

미국이 극초음속 미사일과 중거리 탄도미사일 카드를 꺼낸 것은 중국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그만큼 심각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다양한 요격수단과 함께 B-1B 전략폭격기, 미니트맨 ICBM 등 전략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들 무기는 즉시 대응 능력이 떨어지거나 핵탄두를 탑재하고 있어 실제 사용이 쉽지 않다. 운영에 쓰이는 비용도 막대하다.

반면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제조 가격과 운영유지비가 다른 전략자산에 비해 저렴하다. 기술적 신뢰성도 확립되어 있어 ‘믿고 쓰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중국,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괌에 사드와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함께 배치하면 유사시 탄도미사일 방어와 공격 작전을 병행할 수 있어 군사적 효용성이 커진다. 이렇다 할 전략무기가 없는 미 육군에 전략적 능력을 부여,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토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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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준중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2형이 발사대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극초음속 미사일은 중거리 탄도미사일보다 사거리는 다소 짧으나 적에게 요격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닌다.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북한 탄도미사일은 대부분 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되어 있어 발사 후 신속한 이탈이 가능하다. 미국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차량이 미처 떠나기 전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북한 탄도미사일 기지에서 발사 징후가 포착되면 짧은 시간 안에 기지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을 지원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무기 역할도 할 수 있다.

미국은 일단 INF를 대체할 다자 핵군축 조약을 추진하되 여의치 않으면 군비 증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5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중국과 다른 나라들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핵·미사일 군축) 합의에 대해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은 군비를 지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십년에 걸쳐 확보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전력을 중국이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은 이를 명분삼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배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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