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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박물관 옆 미술관-경복궁을 둘러싸고 조선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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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중심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경복궁, 광화문, 육조거리, 종로, 신문로 등 조선조 한양의 중심거리였던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그 형태와 내용을 유지하고 있다. 경복궁은 궁궐 유산의 본산으로 끊임없이 복원되고 있고 그 주변에는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외교부 등 정부 주요 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경복궁을 둘러싼 곳곳에 조선과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문화, 역사,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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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흘러가는 국토 지리

여행을 다니다 보면 느끼는 점이다. ‘세상은 참으로 빨리 변하지만 국토 지리는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것. 요즘 서울에 가면 자꾸 가게 되는 곳이 세종로이다. 끊임없이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끝을 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게 하는 곳이다. 우습다. 왕조, 귀족 시대에 실질적 수탈의 대상이었던 백성(그들은 오늘 우리의 조상들이다)들이 동원되어 궁궐을 건축하고, 왕조 시대가 끝이 난 오늘날, 다시 국민 혈세를 써가면서 세월에 쓰러져간 궁궐을 다시 복원하는 이 역사가. 그렇게 복원된 왕조의 유물을 오늘의 납세자가 향유하고 즐기는 것을 보면, 대체 역사란 무엇이고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민에게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궁궐뿐만이 아니다. 경복궁 주변의 거리, 골목, 성격도 조선 시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빌딩이 들어서고 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뒷골목 풍경은 여전히 오래 전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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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조선 시대 때 이곳은 외부(지금의 외교부)가 있던 곳으로, 1896년 7월 독립협회 창립총회가 이 자리에서 열렸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예전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을 리모델링 해서 만든 박물관이다(문화관광체육부는 지금 세종정부종합청사 15동으로 이전한 상태다).

지금은 현대식 소재로 마감한, 화려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은, 조용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교적 협소한 관공서를 고쳐서 박물관을 만든 것 때문일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그 길고 지난했던 역사만큼 구불구불 오밀조밀 변화무쌍한 동선이 특징이다. 박물관 이름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인 것 그대로, 이곳은 조선 말기 개화 시점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과 오늘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결과물들을 관람객과 함께 나누는 공간이다. 전시실은 모두 다섯 곳, 언제나 똑같은 내용을 전시하고 있는 상설전시실 네 곳과 역사적 시점이나 이슈에 맞는 특별한 주제를 한시적으로 전시하는 특별전시관 한 곳이 있다. 상설전시를 하는 제1전시실은 강화도조약 체결을 통해 조선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1870년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1945년 해방에 이르는 시기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을 돌아 귀국한 후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선포, 대한제국 애국가, 임시의정원 태극기, 일제강점기, 3.1운동, 임시정부의 활동, 해방을 맞아 김구가 민족 모두에게 제시한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 등의 사료 등을 볼 수 있다. 왕조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당시 선조들의 기대와 두려움, 그리고 실망과 희망과 혼란의 시간을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다. 제2전시실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4.19혁명 이야기가, 3전시실에서는 5.16군사정변 이후 우리나라의 발전, 그리고 민주화 과정을, 4전시실에서는 1987년 6월항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문민화, 여전한 남남갈등, 남북긴장, 그리고 미래를 위한 비전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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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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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전시물은 2전시실의 ‘메러디스 빅토리호’ 미니어쳐였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국전쟁 때 북진을 거듭하다 중국군 참전을 계기로 일단 후퇴할 수밖에 없던 아군의 철수 작전을 위해 흥남부두에 투입된 화물선 이름이다. 이 배에는 군수물자와 선원 47명이 타 있었고, 승선할 수 있는 인원은 60명이었다. 그런데 당시 흥남부두에는 한국군, 미군, 그리고 피난민 등 20여만 명이 몰려들어 큰 혼잡을 빚고 있었다. 이때 미육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민사 고문으로 일하던 의사 현봉학 씨가 ‘피난민들을 태워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고, 알몬드 장군이 그 청을 들어주었다. 이 배의 P.라루 선장은 이미 선적을 마친 무기를 다시 흥남 부두에 내려놓고 피난민 1만4000명을 태우고 부산을 거쳐 거제도 장승포까지 항해,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안전하게 운송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탈출기’를 만들어냈다. 1950년 12월24일, 전쟁의 와중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크리스마스 이브 그날, 메러더스 빅토리호는 부산항에 도착했으나 피난민이 가득하다는 이유로 입항을 거절당한다. 하는 수 없이 선장은 항해 연장을 결정, 거제도 장승포항까지 가서 피난민들을 내려놓게 된다. 전쟁과 북한의 체제를 피해 탈출 행렬을 이룬 난민들에게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승선을 부탁한 의사 현봉학, 승선을 허락하고 부두에 남긴 군수물자를 폭파한 미10군단장 알몬드 장군, 라루 선장 등은 영웅으로 남았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미니어처 앞에 서서 당시 흥남부두의 긴박했던 상황을 상상해 보면, 그때 남으로 피난 온 전쟁 세대가 그토록 미국과 성조기에 애착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피난민 중 이 배를 타고 1950년 12월25일 거제도에 상륙, 3년 뒤에 아기를 낳은 부모도 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들뿐이랴, 당시 후퇴하는 화물선에 몸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와 격동의 시대를 보낸 모든 사람들에게 그 겨울의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20여 척의 화물선은 ‘크리스마스 기적’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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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유관순 열사를 주인공으로 한, 고아성 주연의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2019년 3.1절 즈음 개봉해 지금도 상영 중인 작품이다. 오래 전, 1959년에도 ‘유관순’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었다. 윤봉춘 감독, 도금봉 주연의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는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전에 걸려 있다. 이 전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다. 1919년 3.1운동은 3월1일 하루에 벌어진 만세운동이 아닌,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이 시작된 혁명의 출발이었다. 이 전시는 바로 독립운동사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기미독립선언서, 무명의 3.1운동 참가자들과 그들의 재판 판결서, 여성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김마리아,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수많은 망명객들이 함께 살며 독립을 도모한 상해 임시정부 이야기와 상해에서의 일상, 독립신문 등이 전시되고 있다. 독립운동 하면 공식처럼 떠오르는 인물이나 교과서에서 흔히 보았던 사건보다는 우리가 몰랐던, 꼭 알아야 할 폭넓은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특별전은 9월15일까지 열린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시간 10:00~18:00 수요일·토요일 21:00까지 (종료 한 시간 전까지 입장),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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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 파로키 전시 포스터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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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 등 네 곳에 문을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북촌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건축물이 멋들어지고, 교통이 편리하며, 근처 삼청동, 소격동, 화동, 안국동 등 북촌한옥마을과 인접해 있어서 서울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이 자리에는 조선 시대 때는 소격서(고려 때 흥했던 도교의 신선과 별자리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담당한 기관), 종친부(조선시대 국왕들의 족보와 영정, 그리고 친척들을 관리하던 관청), 규장각(왕실 도서관이자 연구기관), 사간원(왕의 잘못에 대해 왕에게 직접 고하는 기능을 포함, 비리 관리의 탄핵, 정치, 입법 등 왕정 전반에 관여하던 기관) 등으로,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국군수도통합병원, 기무사 등이 있었다. 미술관으로 시민에게 돌아온 것은 2013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미술 애호가, 일반 여행자 모두를 유혹할 만한 전시 기획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전시로는 독일의 영화감독인 고 하룬 파로키의 회고전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마르셀 뒤샹전’. 팝아트의 아버지가 앤디 워홀이라면 뒤샹은 할아버지쯤 되지 않을까 싶다. 1887년에 태어난 그가 20세기 초반 세계 화단에 보여준 실험과 파격은 가히 대단한 것이었는데,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화두와 함께 발표한 기념비적 구조물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와 ‘자전거 바퀴’ 등 레디메이드적 작품을 포함, 뒤샹을 대표하는 미술과 인생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은 감상하는 내내 심장이 쿵쿵거렸다. 특히 세계 16개 도시에서 전문직 숙련공, 노동 달인들의 작업 현장을 단일 쇼트로 촬영한 ‘노동의 싱글숏’은 노동의 쾌감 또는 비극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인상의 필름들이었다. ‘마르셀 뒤샹’,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모두 4월7일까지 전시된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시간 10:00~18:00 금요일·토요일 10:00~21:00 종료 한 시간 전까지 입장, 통합입장권 4000원, 금요일· 토요일 야간개장(18:00~21:00) 무료

주변 유물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주변 미술관 국제갤러리-학고재-세움아트스페이스-아프리카미술관-금호미술관-갤러리현대-아트선재센터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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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박물관의 역사는 꽤 길다. 1946년에 남산 시정기념관에서 문을 연 뒤, 몇 차례 이전 끝에 1993년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경복궁 터의 일부. 해서 경복궁 복원 공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이전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작은 애착이 가는 이유도 그것이다. 2031년에 철거하기로 결정되어 있으니 그 이전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할 운명인 것이다. 다음에 짓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독립된 건물이 될 것은 확실한데, 이전할 곳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본관, 어린이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야외전시장을 만나게 되는데, 오촌댁, 장승, 돌탑, 효자각, 물레방아 등 우리의 전통 마을 풍경을 재현한 전통마을과 1960~70년대의 만화가게, 이발소, 양잠점, 다방 등을 연출한 ‘추억의 거리’를 볼 수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오촌댁’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던 가옥으로, 남씨 집안으로부터 살림살이와 함께 기증받아 이곳에 원형 그대로 지은 건축물이다. 본관은 세 곳의 상설전시관이 운영 중인데, 한국인의 일상을 시간의 변화에 맞춰 전시한 ‘한국인의 하루’, 농경 문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한국인의 일상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전시한 ‘한국인의 일상’, 조선의 사대부 일생을 재현한 ‘한국인의 일생’ 등을 볼 수 있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7

시간 09:00~18:00 매월 마지막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09:00~21:00(종료 한 시간 전까지 입장)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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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서남쪽 귀퉁이문 쪽에 있는 박물관이다. 광화문이나 삼청동 방향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은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곳이다. 소박한 외관과 달리 이곳의 전시물은 화려함 그 자체다. 1392년부터 1897년까지 이어진 조선왕실과, 1897년부터 1910년까지 불과 13년 동안 유지되다 일본에 강제 합병된 대한제국 황실의 유물을 연구하고 보존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왕의 문화를 집대성하는 곳이니 그 화려함이야 비할 데가 있으랴. 전시 공간의 디자인과 조명도 고급스러워 관람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엄숙해지곤 한다. 늘 전시되어 있는 상설전시장의 주제는 역시 ‘조선의 국왕’과 ‘대한제국’. 조선의 국왕 공간에서는 ‘조선의 국왕’,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이, ‘대한제국’에서는 대표 유물과 어가를 볼 수 있다. 제1전시실 조선의 국왕에서는 임금의 의자인 ‘어좌’, 임금의 침소, 집무실, 어진(초상화) 등 왕이 있는 곳들의 배경으로 사용되던 그림 ‘일월오봉도’, ‘어진’, ‘태조임금 금보’, ‘이성윤 위성공신 교서’, 선원록’, ‘국조보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의 궁궐’에서는 경복궁의 평면도이자 배치도인 ‘북궐도형’, ‘궁궐지’, 경복궁 중수 공사 때 상량문과 용 그림을 그린 부적 등과 함께 발견된 ‘육각형 은판’, ‘정조와 신하들의 즉흥시 모음’집, ‘용무늬 천장 장식’, 경회루 연못에서 출토된 ‘청동용’ 등을 볼 수 있다. ‘육각형 은판’의 의미는 재미있고 절박하기까지 하다. 육각형의 각 모서리를 세 개의 ‘물 수水자’가 모여 ‘넓은 물의 모양’을 일컫는 ‘묘淼’자가 되는데, 궁궐에 불이 나지 않길 바라는 기원의 뜻이 담겨있다. ‘왕실의 생활’ 전시실은 그 어떤 전시실보다 보고 또 보게 되는 곳이다. 이곳에 왕실의 의식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 왕세자 등 왕족만이 입을 수 있었던 곤룡포와 모자, 신발, 쇠뿔로 장식한 수납함 ‘화각함’, 대삼작노리개 등 ‘갖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기획전시실에서는 ‘100년 전 고종황제의 국장’전이 3월31일까지 열린다. 당시 대한제국의 시민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에 지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강제로 황제의 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물려준 고종이 갑자기 죽고, 친일파에 의한 독살설이 나돌자 그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그 분노가 1918년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와 조합되고, 됴쿄 2.8독립만세로 꿈틀거렸으며 3.1만세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이라는 독립 전쟁의 길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전시는 그 출발점에 있는 고종의 국장을 둘러싼 상황들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한제국 전시실은 대한제국의 짧은 역사를 반영하듯 그다지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다. 고종황제 어새와 함, 서성대훈장, 명성황후 책봉 시 올린 금보, 명성황후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 경운궁 현판 등과 대한제국 당시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2

-시간 09:00~18:00 주말 공휴일 09:00~19:00 (종료 한 시간 전까지 입장)

-주변 미술관 대림미술관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2호 (19.04.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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